[산방일기]탐라 소식(1)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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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2일(화) 00:00
   
글 장돈식 그림 김지혜

박 형, 그동안 잘 있었쑤꽈! 여기는 제주, 서귀포의 변두리입니다. 섭섬과 서귀항(西歸港)이 내려다 보이는 매우 조용한 객사(客舍)입니다. 지난 날 박 형과 코드가 맞아, 지구촌이 좁다고 나돌아 다니던 그런 여행은 아닙니다. 내 산방, 방그러니 계곡이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도망 나온 피한지(避寒地)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여름에 남들 다가는 피서는 안가면서, 12월이 되면 훌쩍 남(南)으로 떠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죠. 올해로 5년째가 됩니다. 지병(持病)인 고혈압에는 추위가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세상만사가 그저 시들하게만 느껴지는 나이 든 사람들은, 집을 떠나 혼자 생활을 꾸려가다 보면 약간의 긴장(緊張)이 따르게 되죠. 그 현상이 건강에 좋게 작용함을 즐기는 것입니다.

제주도 관광당국은 지난 12월 7일에 제주를 찾은 사람이 5백만 명을 돌파했다고 했습니다. 해외 나들이를 제 집 건넛방 출입하듯 하는 세상에 제주기행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가족 끼리나 패키지로 관광을 한 번 다녀가고는 제주를 아는 척 한다면 큰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도 나는 몇 번을 다녀갔고, 매 해 12월1일에 와서 이듬해 3월 말까지 4개월씩을 여기에 살며 꽤나 깊이 있게 보노라 했건만 아직 이 땅의 겉만 알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본래 따뜻한 기후인데, 지구온난화현상이 여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월초, 이곳 '한림공원'에서 '장수매화'가 지금 꽃망울을 터뜨렸대서 사진과 함께 지방신문에 실렸더군요. 명년 봄에나 피어야 할 꽃이래요. 지상의 천후(天候)만이 아니라 이 땅을 에워싸고 흐르는 해류(海流)도 현저히 더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사(釣士)들이 염원하는 난류성 어종인 돌돔이 근년 들어 잘 낚이고, 여름 더운 계절에나 상미(賞味)하던 자리물회를 지금도 먹을 수 있습니다. 잠수선(潛水船)을 타고 수면아래 20~30m에서 본 바다 밑은 회유(回遊)하는 이런저런 온대성 어류의 환상적인 군무(群舞)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곳 문우(文友)들과 차를 마시러 갔습니다. 북제군 애월읍, 제주시내에서 차로 40~50분 거리데요. 억새꽃만 허옇게 바람에 흔들리는 황량한 들판에 낙락(落落)한 노송(老松) 몇 그루 서 있는 곳이었습니다. 황토벽 초가지붕의 '×향다실'에서 한 우명(牛鳴) 거리(약 5백 미터)의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흰 거품을 만들며 웅성거렸습니다. "이 외진 곳에 찻집이?", 그러나 주인 김 여사는 제법 손님이 있어 장사를 할만 하다고 합니다. 제주 시내에서 모임을 끝내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시내에서 서남방향(西南方向)으로 차를 달려 역시 30~40분 거리, 허허로운 외진 곳에 손님이 북적거리는 한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음식점 이름이 '알락 졸띠', 뜻을 물으니 '알아서 좋은 곳'이라는 제주 방언이라네요. 식 후 먹거리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한 문우(文友)는 "이 집 이름을 바꿔야겠는 데, '몰락 졸띠'로" '몰라도 좋을 집'이라는 뜻이라며 한바탕 웃었습니다.

제주는 화산이 폭발, 용암이 솟아서 동서로 73킬로미터, 남북으로 31킬로미터 크기로 이뤄진 섬이 랍니다. 솟은 용암(溶岩)이 평편(平扁)하게 굳어지고, 유구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표면에 토사(土砂)가 생기니 초목이 뿌리를 내렸겠지요. 내가 사는 강원도는 길을 만들려면 수많은 구릉(丘陵)을 절개(切開)하든가 터널로 뚫고, 계곡(溪谷)은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런 장애물이 없다보니 중장비로 땅 표면을 길 모양으로 다듬고 포장만 하면 훌륭한 길이 됩니다. 내 짐작으로는 강원도의 도로 1킬로미터를 만드는 비용으로 여기라면 15킬로미터는 닦을 것이라는 주먹구구를 해 보았습니다.

박 형! 일만 허지 말앙쉬멍 삽써( 일만 하지 말고, 쉬면서 살아요) 또 편지 쓸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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