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햇볕 잘 드는 집에서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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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06일(수)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극작가 슈니츨러에게 극작가 지망생이 희곡 한 편을 써 갖고 와서 평을 해달라고 했다. 슈니츨러(Schnizler, Arthur 1862-1931)가 며칠 후 다시 온 청년에게 종막(終幕)이 약하다고 하자, 청년은 마지막을 해피 엔드로 바꿀까 물었다.

"그게 아니라 주인공이 자살할 바에는 탕 소리나는 권총으로 해야 졸고 있던 관객들을 깨울 게 아닌가. 이 원고처럼 칼로 찔러 죽으면 소리가 없을 테니 관객들이 잠을 깰 수 없지 않은가."

   
작가지망생이야 실망했겠지만 슈니츨러의 유머 감각은 놀랍다. 나는 이 일화를 읽으며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슈니츨러보다 1백30년 먼저 태어난 하이든의 '놀람'교향곡을 생각했다.

하이든(Haydn, Franz Joseph 1732-1809)은 쾌활하고 호방한 품성으로 유머가 깃들여진 음악을 많이 작곡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철학자, 교장 등 근엄한 것으로부터 군대, 시계, 큰 북 연타, 고별, 놀람 그리고 곰, 암탉 같은 동물 이름의 별명이 붙은 곡들이 많다. 이 중에는 자신이 붙인 것과 남들이 붙인 것들도 있는데 그의 넉넉한 품성, 유머 감각과도 무관하지 않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에는 명암이 짙고 우수에 젖은 음악보다 단순 소박하고 유머가 있는 음악을 듣고 싶다. 새 생명의 탄생처럼 힘이 있고 신선한 희망도 주는 음악, 억압과 구속의 굴레 속의 세계를 두려움 없이 헤쳐나가게 하는 분위기의 '놀람 교향곡' 같은 음악은 이 겨울 아침에 듣기에 좋다.

하이든의 가장 우수한 작품들은 그의 나이 60이 넘어서부터 나왔다고 하는데 '놀람 교향곡'도 61세에 쓴 음악이다. 이 교향곡은 2악장이 유명한데 처음에는 조용한 연주로 쉬운 8소절의 주제가 8번 반복되다가 갑자기 모든 악기들이 큰 소리로 연주되고 팀파니까지 합세해 깜짝 놀라게 한다.

이 2악장에 대한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다. '놀람 교향곡'이라는 애칭은 하이든이 살아 있는 동안에도 쓰였다고 한다. 평소에 음악회에서 끄덕끄덕 조는 귀부인들을 못 마땅하게 여긴 하이든은 이들을 놀라게 하여 잠을 깨워주고 싶었다. 그래서 쉽고 상냥한 음악 뒤에 갑자기 큰북과 큰 소리 연주로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이다.

그 대신 이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연주 뒤에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매혹적이며 경쾌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넣었으니 하이든의 품성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밖에 제1악장도 헝가리의 춤곡으로 여리게 연주되다가 후반에서 신선하고 상쾌하게 바뀌고 3악장은 즐거운 미뉴에트 3개로 이루어졌다. 마지막장도 발랄하고 신나는 춤곡이다.

하이든은 77년의 생애를 통해 끊임없는 실험을 했다. 소나타와 교향곡의 형식을 완성했고, 교향곡에서 현악기를 중심으로 관악기와 타악기를 적절히 안배한 근대적 오케스트라 편성, 각 악기의 활용 등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발견으로 성공한 음악가이다. 쉽게 생각나는 것만 해도 교향곡 '군대'의 1악장 속에 심벌즈를 처음 사용한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에스테르하지 궁의 악단에서 30년이나 재직하면서 숙련된 오케스트라 단원 29명으로 각 악기를 사용하는 실험을 할 수 있었던 행운이 있었다.

성격이 온화하고 항상 즐겁게 살았다는 하이든, 제자들에게도 자상하고 친절하여 '파파 하이든'으로 불리고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주위에 높은 벽을 쌓지 않은 친화감으로 역량을 발휘하게 한 것이다.

'놀람 교향곡'을 들으면 햇볕이 잘 드는 집이 연상된다. 따뜻한 사랑으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아늑한 집. 지난날의 안타깝고 부끄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서 밝고 긴 안목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새벽닭 우는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아침이 찾아오는 일상에서 언제나 희망과 고통은 함께 오는 것. 그러나 상상을 통해 꿈을 찾아줄 수 있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 영혼의 집에도 햇볕이 따스하게 스며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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