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자의 음악에세이]시간의 춤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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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1월 22일(수)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시간의 춤이라니?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시간, 그 시간의 춤이라니. 삶의 매순간을 값지게 보냈거나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폰키엘리(Ponchielli, Amilcare 1834-1886)의 '시간의 춤'이라는 제목은 호기심을 끌 만하다.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과연 제목처럼 모호하기는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무언가 많은 걸 함축한 듯 경묘한 리듬과 숨죽이듯 조용한 소절로부터 폭발하는 큰 울림 등으로 변화무쌍한 춤곡이었다.

카라얀(Karajan, Herbert Von 1908-1989)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반은 제목에 호기심을 갖는 애호가들을 위해 특별히 연출한 느낌이다. 밋밋한 전나무에 은방울, 금방울과 반짝이는 별을 매달고 장식전구로 현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 듯이 화려한 연출로 재미있는 상상을 펼치게 한다. 바이올린의 그윽한 선율, 간간이 하프와 트라이앵글의 영롱함이 가세되고 종이 울리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교묘하게 이어진다. 카라얀 지휘의 연주는 제목에 걸었던 기대와 환상을 넉넉하게 채워준다.

대개 유명한 오페라에는 발레 장면이 있는 것이 많다. '라 트라비아타'의 집시 무희들의 춤을 비롯하여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호프만의 이야기'의 발레 장면 등, 극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긴장을 풀게 하는 양념구실의 춤이 있다. 때로는 경쾌하고 환상적이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춤들이다.

   
오페라 '라 지오콘다'에 나온다는 '시간의 춤'은 얼마나 화려할까 기대하면서 '빈 스테이트 오페라'공연의 레이저디스크(Pioneer Artists, 1986)를 볼 수 있었다.

'시간의 춤'은 3막에 나온다. 엘비제 공작의 저택에서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춤이었다. 하얀 나래의 무희가 스텝을 밟으며 천천히 나오면 다시 하프 반주를 신호로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나와서 셋이 춤을 춘다. 바이올린과 트라이앵글 반주에 미끄러지듯 등장한 프리마돈나의 우아한 동작, 그 뒤에 나온 남성 귀공자와 매혹적이고 극적인 발레가 계속된다. 그때 검은 복장의 남성이 등장하여 두 주인공을 방해하고 음악은 빨라진다. 두 사람은 끝내 살해되고 춤 장면은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아름다운 두 남녀의 사랑에 방해자가 나타나고 결국은 그 손에 주인공이 죽게 되는 내용인 듯하다.

원래 오페라의 내용이 여가수 '지오콘다'의 비련을 다룬 것이라고 한다. '시간의 춤'은 배신한 아내에게 독약을 마시게 한 엘비제 공작이 연회를 베푼 자리에서 손님들에게 보여준 무용수들의 춤이다.

그래선지 음악만 듣고 상상하고 기대하던 것과는 너무 달라 허탈했다. 어쩌면 음악만 듣고 그 음악의 흐름 속에 환상과 낭만을 간직할 걸 그랬나. 현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산타가 갖다 줄 좋은 선물을 예측해보던 어릴 때처럼.

이탈리아의 작곡가 폰키엘리의 오페라'라 지오콘다'는 오페라 공연작품으로선 인기가 없지만, 3막의 발레 음악 '시간의 춤'은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악이다. 나처럼 음악에 끌려서였을까.

시간과 속도의 차이와 슬픔을 모를 때 인간은 행복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네 발로 걷다가 그후 두발로 걷고 최후에 세 발로 걷게 되는 동물이 무엇인가"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죽어간 사람들, 그것은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다.

새벽에서부터 낮을 거쳐 저녁과 한밤중을 묘사했다는 '시간의 춤'. 사람의 일생을 아침, 낮, 저녁으로 상징한 것은 아닐까. 색채감을 주고 변화가 다양해서 신나는 이 음악처럼만 지낼 수 있다면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삶의 일부분을 낭비해버린 사람들이 가버리는 해를 아쉬워하고 있다. '시간의 춤'을 들으면서 시간의 춤에 즐겁게 동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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