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죽음의 그늘 아래서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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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6일(목)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를 케이블TV에서 방영한다고 예고해서 기다렸다. 오래 전에 개봉관에서 봤지만, 모차르트에게 검은 가면의 사나이가 찾아와 진혼곡을 써달라고 한 후 죽음으로 내몰리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때 시한부 삶을 살던 우리 가족이 있었기에, 영화 속 모차르트가 죽음의 그늘에 빠져들던 섬뜩한 분위기가 생각나 다시 보기가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영화에 끌려 화면 앞을 떠나지 못했다. 특히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과 음악을 새로이 발견하는 기쁨이 컸다.

그 중 첫머리에 나온 짤막한 음악이 마음을 끌었다. 모차르트를 살해한 살리에르가 신부에게 고백할 때, 어린 시절 성당에서 기도하는 장면과 아버지 장례식의 회상 장면이 이어지는데 성당의 2층에서 소년들이 부르는 노래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슬픈 성모)'였다.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의 '스타바트 마테르'중 마지막 곡이 흐르다가 '아멘 아멘'으로 끝나는 것이었다.

   
이곡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야코보 토디(Jacopone da Todi 1230-1306)의 시 '스타바트 마테르'에 페르골레시가 곡을 붙였다. 이 시는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아들 예수를 보며 괴로워하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끌어내려 껴안는 모성적인 감동이 담겼다.

14곡으로 되었는데 성당에서는 계속 연주하기도 하고 각 기도문을 사제들이 낭송한 뒤 한 곡씩 연주하기도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가 살리에르가 천재인 모차르트를 질투하여 죽였다는 설(設)이 내용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페르골레시도 천재였다. 그에게도 살리에르처럼 샘내는 이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6세에 폐결핵으로 숨졌다. 그의 어머니도 아들이 병으로 고통받을 때 아들의 아픔을 안쓰러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페르골레시도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리아의 고통이 담긴 시 '스타바트 마테르'에 끌려 작곡했을까. '스타바트 마테르'는 10명도 넘는 작곡가들이 작곡했으나 페르골레시의 작품이 다른 작품들 보다 훨씬 뛰어나 사랑을 받는다.

페르골레시는 고통 속에 작곡하여 숨지기 이틀 전에야 완성했다. 이 처절한 사실을 생각하며 노래를 들으면 마리아의 고통이 더욱 애잔해진다. 성경에는 '스타바트 마테르' 같은 마리아의 심경이 생략되어 있지만 고통스러워했을 모습을 상상한 시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

페르골레시는 가난과 질병으로 진혼곡을 쓰다 숨진 모차르트와 닮았다. 페르골레시의 작품이 3백여 편이라는데 최근엔 30편 정도만 확인되었고 잘 알려진 것은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와 '스타바트 마테르'이다. 그에 비해 모차르트는 많은 작품들이 전해와 사랑 받는다.

결혼도 못하고 숨진 페르골레시에 비해 모차르트는 결혼하여 한때 행복을 누리다가 31세에 타계했으니, 인간적인 행복을 페르골레시보다 좀 누렸다고 할까.

페르골레시나 모차르트는 죽음이라는 암운(暗雲)의 그늘 아래서 살면서도 그때를 마지막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예정된 날짜가 다가와도 얼마후면 숨질 것을 인정하지 않던 우리 가족처럼 말이다.

뒤에 남은 우리 가족들은 일찍 간 사람이 착수했으나 마치지 못한 일들, 뜨개질이며 심었던 묘목들이 시들어가던 모습 등 하다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보는 일로 가슴이 아팠었다. 평소에 어떻게 삶의 내용을 채우며 죽을 때를 맞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은 사람들에게 성실한 삶의 주인공이었음을 확인하게 했다.

가물가물 꺼져 가는 영혼의 심지로 불태운 귀한 시간들. 음악가들은 섬광처럼 순간순간 솟아나는 악상을 악보에 적을 때라도 고통에서 놓여났을까. 질병의 고통을 잊으려고, 죽음의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서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태우며 남겨놓은 두 사람의 유작을 들으며 그늘 아래서도 더욱 값진 꽃을 피워낸 투지에 숙연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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