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자의 음악에세이] 장대한 오르간 교향곡

[ 음악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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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19일(화) 00:00
미국의 유타주 남부, 자이언 캐넌(Xion Canyon)에 가는 길에서 만난 산들은 덩굴이나 야생화 한 포기 없이 붉은 살을 푸석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록에 키 작은 떨기나무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돋아난 것을 보고 가다가 작은 터널을 두 개쯤 지났을 때였다. 붉고 연갈색 무늬를 두른 웅장한 바위산이 널따랗게 펼쳐졌다.

   
갑자기 차 안에 음악이 울려 퍼졌다. DJ출신의 가이드가 장관이 나올만한 시간에 기막힌 음악을 준비했다더니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첫머리였다. 음악의 템포가 빨라지고 버스가 돌아가는 구비마다에서 거대한 얼룩 바위산이 하나씩 선을 보였다. 음악이 더욱 격렬해지자 울퉁불퉁한 바위산 꼭대기가 아슬아슬해 보였다. 높은 산이 끝인가 하고 지나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로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 위의 푸른 나무가 손짓하는 듯했다. 형형색색 바위산들이 압도해오는 길을 얼마큼 지나 깊은 절벽과 협곡이 보이는 곳에 다다랐다고 여겼는데, 옆자리의 일행이 도로 끝 쪽 강의 굴곡이 심한 곳에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보라고 가리켰다. 아, 별천지란 이런 곳이구나. 높은 산봉우리는 밑 부분의 깊은 푸르름에 쌓여 섬이 솟은 것 같기도 했다. 다시 눈을 비비고 가만히 바위산을 보니 세로로 긴 바위조각들이 팬파이프가 이어진 듯했다. 마치 성당 벽에 붙은 거대한 오르간의 파이프처럼 보이는 우람한 바위들이 길게 붙어 있었다.

순간 생상의 오르간 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장대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2악장 후반부에 있는 산이 울리는 듯 웅장한 오르간 소리는 씩씩하고 늠름하여 이 장면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귀국하자마자 생상(Saint-Saens, Camille 1835-1921)의 제3교향곡을 찾았다. 2악장만으로 이뤄진 이 교향곡의 2악장에 멋진 오르간 연주 부분이 있기 때문에 흔히 '오르간 교향곡'으로 불린다. 이 오르간 교향곡의 2악장 후반부커트에 맞추고 버튼을 누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2악장에서 포코 아다지오로 은은하게 오르간이 울려 퍼질 때부터 자이언 캐년 입구의 붉은 산들이 떠올랐다. 날씨가 변덕을 부려서 벼락이 한 차례 지나가던 하늘의 모습도. 이제나저제나 그 웅장한 부분이 나올까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하기 그지없다. 이윽고 가느다란 피콜로의 소리가 사라지고 잠깐 휴지부에 이어 그 찬란한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 대 관현악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급속도로 번지면서 하늘로 치솟는 듯하다. 가슴이 벅차 진정시키려고 볼륨을 낮춘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지으셨을 때, 하늘과 땅, 물, 식물 등을 보시고 기뻐하셨을 때의 흐뭇함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힘차게 치솟은 바위절벽과 붉고 흰 갈색과 노란 색이 어우러진 산들을 지나 협곡에 솟았던 산봉우리가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파이프 같은 우람한 바위가 이어진 듯한 산봉우리, 그 인상적인 봉우리의 이름이야말로 'The Organ'인 것을 귀국해서 알았을 때의 감격이란.

자이언 캐넌은 억겁의 세월동안에 이뤄진 장대한 협곡과 폭포, 아름다운 바위산으로, 229평방 마일에 걸친 큰 규모와 절경으로 이름높은 미국의 국립공원이다. 그리고 생상의 오르간 교향곡도 원숙기인 51세 때 작곡한 그의 대표작으로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애호가에게도 사랑 받는 명작이다. 문학과 고고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생상은 남북아메리카와 동남 아시아, 베트남까지 다닐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장대한 오르간 교향곡이야말로 어느 절경 앞에서 영감을 얻었을까.

생상은 2번 교향곡을 쓴지 34년 후에야 이 3번 교향곡을 썼다. 정상급의 오르가니스트였던 그는 2악장 후반부에서 화려한 관현악과 오르간의 장대한 향연의 교향곡을 완성하고, 높은 평가를 받았을 때 자신도 감격했으리라. 오랜 세월동안 하늘이 이루어준 장관에 대한 감격과 인류가 창작해낸 명곡의 감동은 어느 것이 높다할 것인가. 절경을 보며 명곡을 연상했고, 명곡을 들으며 장관에 느꼈던 온갖 빛깔의 감동을 되새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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