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일기]토마토 걷이

[ 산방일기 ]

이경남 기자 knlee@kidokongbo.com
2006년 09월 13일(수) 00:00
   
낮에 텃밭에서 토마토 걷이를 했다. 토마도 줄기가 열매의 무게를 견디라고 세워 줬던 지주(支柱)를 뽑아내고, 줄기들을 퇴비장에 쌓았다. 명년의 쓸 거름의 원료가 될 것이다. 아직 좀 덜 익은 과일은 장아찌용으로 거두며 올해의 토마토농사를 마감했다. 금년에는 결실이 좋은 편이어서 집에서 먹고 남아 친지들에게 나눌 수도 있었다.

이 과일은 짧은 기간에 알차게 생산을 올리려면 꽃순 4개만 남겨놓고는 순을 잘라야 한다. 그 위의 마디의 많은 꽃이 아까워도 아래 꽃들을 충실하게 기르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이 농사가 끝날 때까지 마디마다 끝도 한도 없이 돋아나는 곁순을 부지런히 치는 데 성패가 달렸다.

토마토는 그게 못마땅한가보다. 이 녀석의 원대로라면 윗줄기나 곁순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놔두면 세월은 없는데 철부지처럼 곁순을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낸다. 청춘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듯하다. 마디마다 순을 쳤건만 또 곁눈을 내고 꽃을 피운다. 토마토는 정력이 넘쳐흐르는 듯 봄도 여름도 늦가을 철 까지도 기운이 왕성하다. 여건이 허락하는 한 자제(自制)라는 걸 모르고 자라고 꽃피운다. 1988년도 일본의 오사카에서 열렸던 박람회에 출품한 어느 농사시험기관의 토마토는 한 그루에 5천8백 개의 열매를 열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토마토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이보다 조금 늦은 가을이었다. 아내는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호박넝쿨 걷이를 해야 한다며 서둘렀다. 이곳은 고지(高地)라서 평지보다 가을이 사뭇 빠르다. 다 영근 호박은 안아 들여다 갈무리를 하고, 덜 영근 것은 오려서 고지를 했다. 호박넝쿨에는 좀 늦게 열린 야구공만 한 애호박, 아직 꽃이 떨어지지 않은 솔방울만 한 것 등이 있다. 그리고도 그 끝 순은 자꾸만 황금종을 닮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간다. 세월은 없는데.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는 것을 이 강토(江土)가 고향인 식물들은 알고 있다. 한해살이 식물들인 벼, 보리, 기장, 콩, 들깨 따위 등의 농산물은 조물주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충실하여 후생(後生)을 위한 씨앗을 남기고 깨끗이 생을 마무리했다. 그 밖에 여러해살이 푸새인 고들빼기, 민들레, 냉이 등과 산야의 온갖 나무들도 겨울 준비가 대단하고 철저하다.

이생에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정리를 한다. 앞 뒷산에 자생하는 많은 나무들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들은 여름철의 푸르고 무성하던 잎을 잎자루 밑에서 차단해서 떨어트린다. 이미 역할이 끝난 잎새로 영양의 손실을 막자는 심산이다. 오는 해를 준비 할지언정 이미 가버린 계절에 연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고 즐기는 가을단풍은 어쩌면 뿌리와 우둠지로부터 매섭게 냉대 받은 잎의 울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땅의 토종이 아닌 외래종 중에는 철부지 식물이 많다. 사계절이 더운 나라인 인도가 고향이라는 호박이 그렇고, 중남미 잉카인들이 개발해서 전래되었다는 토마토, 남쪽 어느 나라에서 온 것으로 아는 칸나, 아주까리 들은 겨울준비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다. 늦은 가을까지 순 내고, 꽃 피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번의 된서리에 끝장이 나고 만다.

이런 식물의 생태를 관찰하노라면 언제나 사회문제가 되는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이 생각난다. 게걸스럽게 중소기업영역까지 사업을 뻗치다가 감당을 못하고 공멸(共滅)하는 사례를 많이 본다. 우리사회에 파고드는 외래문화의 기질과 풍습은 본래 우리네 정서와는 너무 다르다. 한정이 없는 탐욕, 우선 놀고 즐기자는 행태는 끝이 없다.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 한탕주의와 사행심이 빚어내는 사회상을 보노라니 내 텃밭의 토마토와 호박 등의 생태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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