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 최초로 북한학 박사학위 취득한 박정란 씨

[ 교계 ] "하나님 사랑 전하는 연구자 되길 소망합니다"

정보미 기자 jbm@kidokongbo.com
2006년 09월 12일(화) 00:00
   
부녀가 함께 북한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게 돼 화제에 오른 박완신장로(왼쪽) 가족. 딸 정란 씨(가운데)는 "새터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노력이 북한 선교에 도움이 되길 원한다"고 전했다.
"어릴적부터 요리사가 꿈이었다는 40대 중반의 새터민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이분은 직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북한에서도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탈북 후 제 3세계를 거쳐 한국에 들어와서는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그 꿈을 이뤘다고 합니다."

국내 여성중 최초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박정란(34, 소망교회 출석)씨.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그녀는 '여성 새터민의 직업가치와 진로의사결정과정 연구: 북한에서 남한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적 접근'의 논문을 발표하며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새터민들도 북한의 어린시절에서부터 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시작하며 여성 새터민들 35명과 그들을 상대로 직업알선 및 상담을 해주고 있는 자원봉사자 1명을 인터뷰했다. 가설을 수정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2년 반에 걸쳐 완성된 논문. 박 씨는 "지금까지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어린시절, 박 씨의 아버지 박완신장로(소망교회)는 관동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대북방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하는 일을 유심히 지켜보며 자란 박 씨는 북한 관련 책을 발간할 때는 컴퓨터 워드작업 도우미로 나서기도 하며 자연스레 북한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대를 이어 북한연구에 헌신하고 있는 박 씨는 "어릴때부터 북한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북한 학자로서의 소명을 갖게 된 것은 97년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부터였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에 2번 실패한 박 씨는 당시 삼수를 할 것인가 독학사로 학사학위를 취득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독학사를 택했다. 그리고 국가가 시행하는 4단계까지의 시험에 합격하면 학사학위가 주어지는 독학사를 2년 만에 취득해 동기들과 같이 졸업하고 경희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했다.

경희대에서 북한연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박 씨는 박사과정을 밟고자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협동과정에 원서를 냈다. 하지만 독학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인 탓에 서류전형에서 번번히 탈락하고 말았다. 박 씨는 "독학사를 취득했다고 하면 주변에서 가정이 불우했거나 힘들었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졌다"며 "그 일을 경험하면서 북한 이탈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박사 취득은 쉬운 길이 아니었다. 이화여대 대학원 입학 실패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며 눈물과 기도로 지새기를 몇날 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모 선교단체에서 자원봉사 간사로 일을 하며 북한 이탈주민들을 위해 돕기 시작했다. 새터민 청소년들의 가정을 방문하며 영어 등의 공부를 가르친 그녀는 "북한학을 공부했다고 하면서도 그 사람들과 부딪히며 많은 상처를 주었다"고 회상하며 "내가 북한을 공부하면서도 이렇게 부딪히는 게 많은데 앞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 얼마나 더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될지 본격적으로 문제를 의식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3번째의 도전 끝에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졸업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계속됐다고 전했다.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인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이화여대 북한학협동과정 김석향 주임교수가 YWCA와 여성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북한이탈여성의 직업의식 현황'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를 권유해 왔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박 씨는 30여 명의 새터민여성들과 직접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박 씨를 박사로 만들어준 '여성 새터민의 직업가치'에 대한 논문을 쓸 수 있게 됐다.

남한에 와서 새로이 정착한 새터민들의 이제까지 연구는 '북한에서 경제적 위기를 겪었으니 경제우선 가치에만 집중할 것이다'라는 가설에서 비롯된 연구보고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박정란 박사의 논문은 '북한 주민들의 자아실현에 대한 마음'에 중점을 두어 논문 심사위원들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박 씨는 새터민들이 탈북해 제3국을 거쳐 남한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직업가치에 따라 진로 의사결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밝혀냈다. 박 씨는 "여성 새터민들도 취업욕구나 가정에 대한 책임감, 생활력 등이 남성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며 "인터뷰를 통해 그들에게 자아실현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 자신의 선입견부터 깨뜨리게 됐다"고 전했다.

"물직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이 지향하는 직업의 가치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그녀는 "앞으로 새터민들을 대상으로 진로상담할 시에는 그들도 인간관계, 사회헌신 등 여러 가치를 중시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연구가 한국교회의 북한선교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박 씨는 "기독학자로서 교인들이 새터민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하며, 새터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박 씨는 "고집세고 주장 뚜렷한 딸이 실패할 때에도 믿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며 "자식교육보다 믿음을 강조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라고 말씀해주신 아버지의 격려가 마음 속에 큰 자산이 되었다"고 말했다.

"자다가 깨서 일어나보면 항상 기도하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모습은 훗날 제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포기하지 않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네가 하나님 안에서 큰 일을 할 것'이라고 소망을 주셨던 부모님. 저를 위해 날마다 기도로 후원해주신 두 분이 계셨기에 하나님을 전하는 학자의 소망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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