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는 아니어도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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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23일(수) 00:00
지난해 3월이었다. 마당 앞, 개울에 백조를 몇 마리 띄우고 싶어서 병아리 장사를 불렀다. 백조는 없고 흰 오리를 가져 왔기에 암오리 아홉, 수오리 하나, 열 마리를 분양받았다.

자라는 과정을 보노라니 '베이징 덕'(Beijing duck)의 특성이 있었다. 젊던 날, 중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중국인들은 오리 먹기를 좋아하고, 그 기르는 법도 대륙적'이라는 기억이 새롭다. 지금은 장강(長江)이라고 하는 양자강(陽子江)발원지는 그 넓이가 지름이 7백km에 이르는 한국국토에 버금가는 넓이의 동정호(洞庭湖)다. 호반(湖畔)에는 부화장이 있어 오리병아리를 생산하고 있었다.

육용오리를 기르는 전문가들이 능력에 따라 한번에 3~6천 마리를 분양받아서는 호수에다 몰아넣는다. 농부는 가족들과 숙식은 할 수 있으나 동력(動力)은 없는 작은 거룻배에 오른다. 낮에는 강물의 흐름에 배와 가축 떼를 맡겨 흐르고, 밤이면 닻을 내리고 기슭에다 배를 매고는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강의 길이는 세계최장인 6천3백킬로미터다. 황해바다로 하구(河口)가 열린 상해(上海),한구(漢口)등 대도시에 이르기까지는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다 자라서 성압(成鴨)이 된 대군(大群)을 도압장(屠鴨場)에 팔아 넘기고는 다시 상류인 동정호로 돌아간다. 참으로 중국인다운 사육방법을 본 나는 그 신선한 충격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근년에 이르러 경제대국으로 변신한 중국이 장강(長江)의 중류인 삼협(三峽)지구에 댐을 막아 지난날의 그 낭만적인 광경은 볼 수 없겠고 전설로나 남은 얘기가 되었다. 그러나 내 집 앞의 개울을 헤엄치는 몇 마리 저 흰 오리는 그 날 의 그 광경을 회상시키는 실마리가 되곤 한다.

내 집 오리들의 불행한 날이 닥쳐왔다. 집에서 기르는 진돗개,온달이가 매어둔 끈에서 놓이면서 수렵본능이 발동해 낯선 이 오리 떼를 습격했다. 당황한 이 녀석들 중에 맨 앞으로 나선 녀석이 있었고,내가 보고 황망히 개를 붙잡기 전에 이미 몇 마리가 개에게 물려 죽었다. 일곱 마리가 남았는데 다 자란 후에 보니 전부 암 오리다. 위험이 닥쳤을 때 앞에 나섰던 녀석이 수 오리였던 것이다. 대개의 동물의 세계에서 보는 현상이지만 먹을 때가 되어 수컷은 암컷들을 이끌고 먹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와서는 암컷들이 다 먹고 물러난 후에라야 자기는 먹고,외란(外亂)에는 앞장서서 대항하는 것은 수컷이라는 데서 가부장제(家父長制)의 원형을 보는 느낌이다.

수오리 없이도 잘 자랐는데 문제는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암 오리들이 동성연애 행위를 하는 것이다. 보기에 안됐다는 생각에 수오리를 기르는 어느 문우에게서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이게 내 집의 '베이징 덕'보다 체구가 좀 작은 '청동오리' 수오리였다. 품종(品種)은 달라도 동종(同種)이요 이성(異性)간인지라 금세 어울렸다. 풀밭에서 놀다가도 수오리가 리드를 하며 물로 들어가면 거기서 수영을 즐기고 사랑도 나눈다. 오리,거위,기러기,원앙새 등 수조(水鳥)들은 조류이면서도,닭이나 많은 조류의 수컷 생식기관과는 다르게 음경(陰莖)이 있다.

자리 수 지능을 가진 사람을 비하(卑下)해서 '닭대가리'라고 하는 경우를 보는데 오리는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 녀석들은 무얼 보고 생각을 할 때면 머리와 눈을 기웃기웃거려 매우 신중한 듯하다.

예를 들면 낳은 알을 그녀석이 보는데서 꺼내오면 다시는 그 자리에다 알을 낳지 않는다. 주인에게 정을 주어 내가 정자에 오르면 계단 밑에 모여 앉아서 눈맞춤을 하며 애정을 표시한다.

배(船)는 선체를 추진하는 스크류가 대개는 선미(船尾)에 있다. 아마도 오리에게서 배운 것 아닐까, 집 뜰 잔디밭은 걸을 때면 발이 뒤에 달려서인가 뒤뚱거린다. 일렬종대로 주인의 뒤를 따를 때면 바라던 '백조(白鳥)는 아니어도'이 '베이징 덕'들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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