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름다운 소리 울려와도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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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16일(수) 00:00

방송사에 있었을 때 프랑크(Franck Cesar 1822~1890)의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을 자주 방송했다. 합창과 독창 등 우아한 클래식이 많았지만, 테너 파바로티와 영국의 팝 가수 스팅의 듀엣을 많이 틀었다. 이 노래는 파바로티가 92년에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모레나에서 열었던 빈혈병 타라세마(Thalassema)퇴치를 위한 자선공연의 실황음반 '파바로티와 친구들'에 수록되었었다.

스팅 외에도 빠뜨리시아 까스, 주께로, 루치오 달라, 브라이언 메이 외 여러 나라의 인기 가수들과 함께 인기곡을 불렀는데 맨 앞에 수록된 곡이 '생명의 양식'이다. 파바로티의 웅장한 목소리가 시원하게 퍼지면서 현대인의 깊은 고독을 지닌 스팅의 목소리가 조화를 이룬 이색적인 매력이 있었다. 신청곡 엽서도 많았고 음반 판매량도 많았다는데, 아마도 최고 테너가수와 인기가수가 선한 일을 함께 한 인간적인 감동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나는 이따금 이 노래를 들으면 엉뚱하게도 시골의 어느 정경이 떠오르곤 했다. 친척집 뒤란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에서 살구 만한 파란 감이 툭툭 떨어질 때면 건너편 산에서는 소쩍새가 '소쩍 소쩍'하고 울어댔다.

들판은 보리 누름으로 출렁이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여름의 긴긴 대낮. 대문을 열어놓은 친척 댁 안마당으로 아이들과 어린 동생을 들춰 업은 소녀까지 모여와서 놀다가 끼니때가 되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른들 식사가 끝나고 나면 남은 밥이나 누룽지를 끓여서 함께 먹자고 하면 어린 동생에게만 먹이고 자신은 먹는 둥 마는 둥하던 눈이 까만 소녀가 생각났었다.

보릿고개여서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이들이 떠올랐고 으레 자기네 집처럼 와서 식사를 함께 하던 아이들을 얄밉게 생각했던 마음까지 떠올라 자책감이 들곤 했다.

이 노래를 방송할 때만 해도 일반인들도 애창하는 곡이어서 생명의 양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단순한 것으로 짐작했었다. 가난과 질병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 파바로티와 스팅이 호소력 있게 부르는 노래가 질병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곡식 낱알로 여물게 하고 언젠가는 굶주림과 질병이 사라질 날이 오겠지 하는 희망도 가졌었다.

'생명의 양식'은 원래 '천사의 빵'이라는 노래로 가톨릭에서 성찬식에 쓰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며 성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성찬식 때마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기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살아 계시며 스스로를 희생의 제물로 성부께 바치고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되는 신비한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런 종교적 의미까지는 모르더라도 '생명의 양식을 하늘의 만나를/ 맘이 빈자에게 내려주소서/ 낮고도 천한 우리 긍휼히 보시사/ 주여 주여 먹이어 주소서/ 주여주여 먹이어 주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듯한 노래에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다함께 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랑이 담겨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였던 프랑크는 벨기에 태생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그의 작품에는 신앙심이 반영되어 있다. '교향적 변주곡'과 '전주곡 코랄과 푸가' 그리고 바이올린 소나타 등 음악성이 높은 작품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단순하고 소박한 노래 '생명의 양식'이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 받고 있다.

프랑크는 파리 성 클로틸드교회의 합창 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성가를 많이 작곡했다. 60세에 파리음악원 오르간 교수로 임명된 그는 자신의 만족스럽지 못한 미사곡에 붙일 '생명의 양식'을 작곡했다. 결국 이 노래는 그의 대표적인 선율 가운데 하나로, 평생 신앙생활로 일관한 그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배고픈 이에게,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에게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이 들려와도 한 줌의 쌀과 약 같을 수는 없겠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명의 양식'을 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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