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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5월 10일(수) 00:00

엘가(Elgar，Edward 1857-1934)의 행진곡 '위풍당당'을 듣노라면 영국 국회의사당의 시계탑에서 들려오던 빅 벤의 종소리가 생각난다.

저녁 무렵，템즈강 건너편에서 고딕식 건물이 죽 늘어선 국회의사당을 보며 지났는데 남쪽 끝의 빅토리아 탑과 북쪽의 우뚝한 시계탑을 확인하는 동안 종소리가 길게 울려왔다. 시계탑 안에 있는 거대한 종이 표준시에 정확하게 울리는 것인데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쉬워 계속 뒤돌아보니 잔물결이 이는 템즈강 위로 아름다운 조명을 받은 웅장한 국회의사당 건물이 그야말로 위풍당당해 보였다.

역대 왕이 살아 왔다는 높다란 윈저 성이나 그들의 대관식이 이뤄졌던 웨스트민스터 사원，국사범을 가두었던 런던타워 등의 유래만으로도 오랜 군국주의의 위세와 비극에 압도되었던 가슴에 위안처럼 스며오던 종소리. 여행객에게 기도하라고 부르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의지하라는 듯이 들렸었다.

엘가의 행진곡 '위풍당당'(Pomp & Circumstance March)도 영국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고 용기를 주려고 만든 음악이다. 엘가는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중의 하나인 <오셀로 designtimesp=22193>중 한 장면의 대사에서 힌트를 얻어 밝고 힘찬 음악을 작곡했다. '위풍당당'，그 힘차고 밝은 멜로디를 듣지 않고 제목만으로도 자신 있고 늠름함이 연상된다.

엘가는 평소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정독하고 있었나보다. 아름답고 지체 높은 원로원의원의 딸 데스데모나가 유색인종인 오셀로의 승승장구한 무용담에 반해서 부모 몰래 결혼한다. 뒤늦게 알아챈 의원이 노발대발하여 오셀로를 처단하려고 달려오는 것을 본 장군의 기수가 "어서 숨으라"고 하자 오셀로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한다. 무공과 신분，그리고 결백함에 비춰서 떳떳하게 행동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엘가는 오셀로의 이 장면에서 어떤 위험에도 떳떳하게 나서려는 오셀로의 용기가 영국인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영국인들은 영국이 세계에서 최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서도 침략을 일삼는 주변 나라들의 어수선한 분위기에 흔들려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엘가는 영국 음악의 선구자로서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위해 다섯 곡으로 이뤄진 호쾌한 행진곡을 작곡했다.

이 행진곡은 국민들에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위축되었던 영국인의 자존심을 찾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왕 에드워드 7세는 이 곡을 좋아해서 엘가에게 가사를 붙이게 했다. 엘가는 벤슨의 시를 인용하여 '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제목과 가사를 붙여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서 축하곡으로 부르게 했는데，이 노래도 국민들이 즐겨 불러 제2의 애국가가 되었다.

지금은 다섯 곡의 행진곡 중 가장 좋은 제1번만 연주된다. 1번은 6분30초밖에 안 되는 곡으로 전반부는 전형적인 행진곡의 호쾌한 악상이고 후반부는 영국민요의 선율이 연상되는 친근감 있는 선율이다. 행진곡에는 실제로 행진할 때나 의식에 사용하는 실용적인 것과 감상용 두 가지가 있는데 이 곡은 후반부의 아름다운 선율 때문인지 두 가지 면에 어울려서 행진할 때나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엘가보다 17년 늦게 태어난 윈스턴 처칠이야말로 위풍당당한 대표 인물로 생각된다. 그는 패기만만하고 좌절하지 않는 정신력을 지녀서 젊어서는 아프리카 전쟁에 참가하였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영국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싸워 승리를 얻어냈다. 손가락으로 맨 처음 승리의 'V'자를 그린 인물이기도 하다. 근대사에서 가장 강한 정신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항상 "위험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고 했고 자서전에서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회고해볼 때 나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강한 정신력으로 위풍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밝고 힘찬 노래，침체해 있는 우리네에게 잠재해 있는 가능성을 실현시킬만한 노래가 아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