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역사와 함께 한 시간, 큰 축복"

[ 교계 ] 순교기념관 떠나는 정성원 장로 김명숙 권사 부부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6년 04월 30일(일) 00:00

"어린이들조차 들어올 때의 모습과 달리 이 기념관의 나갈 때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서 이곳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사실을 절감하곤 했습니다."

지난 1989년 용인의 순교자기념관이 개관된 이래 20년 가까운 세월을 헌신적으로 관리해 온 정성원 장로와 김명숙 권사 부부는 지난 3월 이제 막 꽃이 피어나는 계절을 뒤로하고 정든 순교자 기념관을 떠나게 됐다.

기념관의 첫 출발부터 함께 했기에 갑작스럽게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을 이들 부부는 "의미 있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였는데 정작 돌이켜 보니 받은 은혜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며 지낸 우리 부부를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는 고백으로 대신한다.

한국교회는 지난 84년 백주년의 역사를 맞이하며 대규모 기념행사와 함께 인천에 선교기념탑 건립과 양화진 새 단장에 이어 용인에 순교 신앙의 전파와 계승을 목적으로 기념관을 건립하게 됐다.

외진 골짜기에 세워진 기념관은 교통 여건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닌데도 지난 16년의 세월 동안 약 60만 명의 국내외 성도들이 다녀갔을 정도로 주요한 기독교 유적지로 자리를 잡았고 세대를 건너 모든 방문자들에게 준 감동과 교훈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개관 이후 관장이 바뀌는 동안에도 50대에 이곳에 첫 발을 디딘 정 장로 부부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념관을 지키며 관리하고 또 안내하면서 방문자들은 물론이고 한국교회 고귀한 순교자들과 함께 지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젊은 날 주셨던 은혜와 남다른 공직 생활의 경험, 심지어 이곳에 청빙을 받기 직전 독파했던 수십 권의 기독교 수난물 모두가 다 이곳으로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 과정이었다고 깨닫는다.

평생 어려움을 모르던 경제적 형편에도 불구하고 중병으로 인해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쇠약해진 부인 김 권사였지만 개관 직후 적막한 기념관으로 옮겨온 뒤 주변에 넘쳐나던 건축 과정의 쓰레기와 폐기물 앞에서 잠시 낙심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해달라'던 기도의 응답"이었음이 깨닫고 "잡초를 뜯느라 손가락 마디가 휠 정도록 힘들고 표현하기 힘든 궂은 일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주변 지역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진입로도 새롭게 포장되는 등 변화도 많았지만 여전히 기념관은 '하늘(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법'에 익숙해야 견딜 수 있는 외진 곳이다. 또한 세월이 지나면서 여러 차례에 걸친 보수공사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손 볼 곳은 늘어가지만 순교자들의 후손이나 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교회들의 관심은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곳에서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방문자들을 묻자 이들은 '일본 교회 성도와 애양원 교우들, 그리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꼽았다.

선조들의 침략 만행에 대한 사죄의 심정이나 아버지와 같은 사랑으로 돌보아 준 손양원 목사에 대한 각별한 존경과 사랑은 쉽게 이해가 됐지만 마지막 방문자에 대해서는 이유를 물을 수밖에 없었다.

"주5일제에 따라 방학뿐 아니라 주말마다 청소년, 어린이들의 방문이 늘어가는데 이들의 방문이 제일 짐스럽기는 해도 3층 전시실에 올라간 뒤 진지해 지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고 보람을 느낀다"며 짓는 환한 미소 속에 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사심없이 기념관을 사랑했던 이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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