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속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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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4월 26일(수) 00:00
글 유혜자 그림 장주봉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진혼곡)'대신 편안한 죽음이 느껴지는 브람스(Brahms, Johannes 1833-1897)의 '독일 레퀴엠'을 듣는다. 일곱 개의 노래로 되어 있는 레퀴엠 중 네 번째 노래 '당신이 계신 곳은 얼마나 좋은가요'는 슬픔을 씻어주고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 같다. 레퀴엠은 죽은 이의 넋을 달래기 위한 음악이지만 브람스의 레퀴엠은 살아 있는 이에게도 위안이 될 만큼 평화가 느껴진다.

재작년 어느 날 우리 집에 들렀던 친구 C가 클래식CD를 들여다보며 '제일 슬픈 곡과 제일 아름다운 곡'을 한 장씩 달라고 했다. 나는 검은 가면을 쓴 사내가 모차르트에게 진혼곡을 써달라고 부탁하고 간 뒤 건강이 악화되어 레퀴엠을 쓰다가 죽은 영화 '아마데우스'가 떠올랐다. 그래서 가장 슬픈 것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한 곡 딱 고르기가 어려워 나중에 주겠다고 하고 그냥 보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 친구가 암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성도 둔해지고 두뇌회전이 안되어 작은 일도 부담스러워 초조해진다고 하는 내게 "이제는 잘하려는 욕심으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살라"면서 "나이가 드니까 왜 이렇게 꽃들이 아름답게 보이니"하고 말하던 친구에게서 나는 무디게도 어떤 느낌을 못 받았었다. 수술결과가 좋지 않아 재차 입원한 친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죽음이 침상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병을 감추고 우리 집에 왔을 때 슬픈 레퀴엠CD를 주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름다운 CD 한 곡을 줬더라면 그 친구의 마음이 밝아져서 악화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심각한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했던 생각이 난다.

애타는 가족들의 마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친구가 곧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라는 사실에 몸을 떨면서도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와 멀지 않다는 냉정한 이성이 머리를 들기도 했다. 누가 먼저인지 순서야 짐작할 수 없지만 어떻든 죽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나이에 이르렀음을 깨달아야 했다. 젊은 시절과 달리 레퀴엠 듣기가 어색하지 않아졌다.

브람스는 레퀴엠을 쓰려고 작정했던 스승 슈만이 돌아가자 그의 뜻을 이어받아 레퀴엠에 착수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는 죽음이 자신과는 먼 것 같아 미뤄두었다가 어머니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자 완성을 서둘렀다. 브람스는 어머니의 권유로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성경을 읽어서 그의 창작정신에 그대로 침윤되어 작품에 맑게 투영되었다. 그때까지의 다른 레퀴엠들은 라틴어가사였는데 브람스는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에서 가사를 취했기에 독일 레퀴엠이라 부른다.

이 레퀴엠은 성경을 근거로 했지만 종교적인 교리보다는 인간에 대한 연민에 집중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젊은 시절에 가곡과 합창곡을 많이 작곡했던 브람스는 자신의 레퀴엠을 진혼 미사에만 쓰는 종교의식용 보다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주회용의 것으로 작곡하였다. 다른 레퀴엠에는 당연히 있는 '심판의 날'이 없어서 당시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종교 음악의 인간적인 명곡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존재와 천국의 세계는 인정하면서 지옥의 세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브람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브람스는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심판의 날이 없이 사후의 문제를 신의 영역으로 밀어놓으려는 신중한 사고를 보였다고 할까. 브람스는 죽음을 '그곳에서 사랑의 노래만 들려 오는 그런 평온한 세계'로 인정할 만큼 낭만적으로 생각하였다.

살아 있을 때 슬픈 음악도 아름다운 음악도 주지 못했던 친구에게 이젠 그리움을 넘어, 영혼의 평화와 안식을 위해서 브람스의 레퀴엠을 들려주고 싶다. 그의 멋진 레퀴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도 하고 슬픈 곡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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