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과 새 이야기(2)

[ 산방일기 ] 장돈식장로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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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22일(수) 00:00
앞산, 솔숲에는 산까치가 살고 있다. 표준말로는 '어치'라고 하나 나는 이 지방 사람들이 부르는 '산까치'라고 한다. 경계심이 대단해서 늘 먹이를 주고 친해지려해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다.

   
사전에는 '까마귓과에 새, 몸의 길이는 34센티 정도이며 포도색이고 이마와 머리 위는 붉은 갈색이다'라고 나와있다. 이 새에 관심이 있어 어려서부터 관찰을 했는데 고향 황해도의 산까치와 여기 강원도의 산까치라 저희들 무리에서 지저귀는 소리가 다르다. 사투리가 있는 것이다. 조류(鳥類)의 사투리 중에서 아주 뚜렷한 새는 꾀꼬리를 들 수 있다고 어느 글에 쓴 바가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산방둘레의 모든 새들도 겨울동안 눈이 쌓이면 굶주릴 수 있으므로 비워두는 정자에다 먹이를 놓아두고 멀리서 본다. 멧비둘기도 오지만 성깔이 드센 산까치가 쫓아내고 독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 번은 거기서 수탉 우는 소리가 난다. 정작 수탉은 저 멀리 아래 밭에 있는데. 이상해서 눈여겨보니 산 까치가 수탉의 소리를 모창(模唱)하고 있었다. 산까치는 다른 새의 소리를 거의 똑같이 흉내내는 재주가 있다. 저 새를 보고 있노라니 아득한 옛날 일이 생각난다. 1946년경 내 나이 30대 후반이었을 것이다.

38선이 마을 밖을 지나가서 나의 고향은 공산정부가 장악을 했다. 공적(公敵) 제1호인 나는 접경인 옹진군으로 월남을 했다. 거기에는 역시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載寧邑)의 재령동부장로교회를 목회하다가 정년퇴임한 김용승목사님이 말년을 살고 계셨다. 교회에서 마련해 드린 것으로 아는 과수원을 가꾸며 지내셨는데, 소일거리로 새를 기르셨다.

가끔 찾아뵈었는데 현관에 들어서면 "누구요~"하신다. "저요, 장집삽니다"하면, "예수 믿으시오~"한다. 지금까지 방문위의 걸려 있는 새장의 새하고 대화를 한 것이다. 뒤에 안 일이지만 그 새는 구관조(九官鳥)라고 했다. 비둘기만하고, 검고, 양 날개에 흰 깃이 한 개씩 있었다. 앵무새보다도 사람 말소리 흉내를 더 잘 낸다고 했다.

그 어른은 약 2~3십종의 새를 기르는데 그중에는 '백령'이라는 새가 있었다. 참새보다 약간 큰 듯한 몸매에 온 몸이 회색이고 목에 여자들이 목에 흰 숄을 두른 듯 흰 깃을 둘렀대서 백령이라는 이름을 얻은 듯했다. 이 새는 그 방의 수많은 새들의 우는 소리를 한 마리도 빠짐없이 모두 모창(模唱)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는 종달새 울음을 하는 데 너무도 똑같이 울었다. 목사님은 웃으면서 "저 녀석은 저렇게 남의 소리는 잘 내면서 정작 제소리는 없어요"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김목사님이 새에게 말을 가르치는 과정을 듣고 보았다. 같은 새에도 더 영리한 녀석과 그렇지 못한 개체(個體)가 있다고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머리가 좋은 녀석을 골라 조용한 방에서 그 새가 즐기는 먹이, 예를 들면 작은 새 종류는 들깨, 덩치가 큰 녀석은 호박씨 같은 것을 주며 "누구요~"를 거듭 들려준다. 처음 백번은 관심이 없다가 거듭 들려주면 먹이 먹던 입놀림을 멈추고 주인의 되풀이하는 말을 듣는다. 계속 "누구요~"를 하면 주둥이를 오물오물 움직인다.

천 번을 넘겨 들려주면 같이 따라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발음을 하고, 그렇게 며칠을 더 계속하면 주인의 음색(音色)까지 닮아간다고 한다. 그 구관조의 "누구요~"는 참으로 놀라운 애정과 집념, 인내의 훈련결과였다. 단음절(單音節)을 마스터 한 녀석은 "예수 믿으시오" 같은 두 음절을 가르치기가 좀 쉽다고도 했다. 그 후 세월은 흘러서 반세기굨 이미 고인이 되었을 김목사님, 그가 사랑하던 새들,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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