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사학법, 반드시 재개정돼야"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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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3월 14일(화) 00:00
   
오 인 탁
연동교회 장로ㆍ
연세대 명예 교수


개정된 사학법은 반드시 다시 개정되어야 한다. 아니, 폐기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사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학은 이 땅에서, 현정권이 그렇게나 강조하고 있듯이, 부정부패의 온상이 아니라, 나라를 되찾고 바로세우는 보루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래없는 특별한 사학의 역사를 갖고 있다. 사학은 이미 조선조 5백년 동안에 민족 교육의 기초요 바탕이었다. 관학으로 사학(四學)과 성균관이 있었으나 성장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은 서당이 맡았으며, 서당은 모두 사학이었다. 뜻있는 기성세대가 성장세대를 교육하는 열정은 그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이 되어, 개인이, 마을이, 종교단체가 서당을 세워 마을의 어린이를 가르쳤다. 나라는 서당의 교육을 간섭하지 않았다. 무엇을 가르치는지, 선생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누가 설립했는지, 어떻게 운영되는지,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여기엔 으레 잘 가르치리라는 기본적 신뢰가 있었다. 이러한 신뢰가 동반되어 무제한적으로 부여된 자율의 공간에서 서당은 자유롭게 그러나 권위있게 젊은이들을 조선의 젊은이들로 교육하였다.

개화기에 국운이 쇄하여 나라의 존속이 풍전등화같이 위태로워졌을 때에 뜻있는 선비들은 교육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뜻을 모았다. 그 결과로 선교사들이 왔다.

우리나라에 온 첫 선교사들은 고종황제로부터 나라를 교육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었다. 선교의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온 언더우드와 아펜셀러도 처음엔 다만 교육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연세, 이화, 숭실, 배재, 경신이 탄생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의 사학의 역사는 근대학교사가 되었다. 이렇게 사학은 조국근대화의 중심이었다. 삼일독립운동을 비롯하여 일제하에서 벌어졌던, 새로워져서 힘을 모아 나라를 되찾자는 모든 운동의 중심엔 사학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더불어 사학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정치, 경제, 학문, 종교,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라를 이끌고 갈 인물들 절대다수가 사학 출신이었다. 지금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사학이 있었기에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다. 만약에 사학이 없었다면 포항제철도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학을 현재의 노무현 정권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물론 포장은 그럴싸하다. 개방형이사와 친인척 겸직 및 취임 제한제도를 두어 사학을 투명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참으로 고약한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학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학을 장악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안된다. 사학을 통제하는 자가 나라를 지배한다. 사학을 통제하기 위해선 사학을 장악해야 한다. 이는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교수평의회 같은 조직에서 이사의 1/4 이상을 선임하게 하고 이사의 임기는 폐지하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개정 사학법이 시행되면 학교는 정치적 세력다툼의 마당이 되고 설립 이념에 따른 교육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종교교육은 불가능해지고, 밖에서 투쟁하여 안으로 들어온 이사들로 인하여 학교는 그들의 훈련장이 될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기껏해야 여당과 전교조의 코드로 교화된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무엇이 해로우냐? 너희들은 지금까지 너희들의 코드로 학생들을 철저히 교화해오지 않았느냐? 공교육은 민주적으로 열려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교육은 열려있어야 하지만, 교육적으로 열려있어야지, 민주적으로 열려있어선 안된다.

사학은 설립 이념에 따라 교육할 수 있는 자율과 자유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이 교육권이 외부의 낯선 세력에 의하여 침해되고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어떠한 제도도 그 자체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학을 그대로 놓아두라. 개정사학법은 마치 모유를 분유로, 친모를 계모로 바꾸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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