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개울

[ 산방일기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2월 28일(화) 00:00
산방에는 개울이 있다. 실개천 보다는 흐름이 많고, 원주천이니 하는 내(川)보다는 작다. 이곳에 터 잡을 때 나는 이 개울에 마음이 끌려 여기에다 산방을 지었다. 일년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며 자연을 연출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수락석출(水落石出)의 계절이다. 수위는 내려갔고, 두꺼운 얼음이 덮여 있다. 그 위에는 눈도 쌓였다. 그러나 겨울에도 개울은 잠들지 않는다. 빠끔히 열린 얼음구멍을 들여다보면 추위를 이기는 작은 물고기들이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다. 이 개울의 주인공으로 자처하는 물고기는 버들치다. 그러나 요즈음은 바다에 사는 망둥이와 꼭 같이 생긴 두굴치(학명, 표준이름은 불명)가 약간 거드름을 피우며 먹이를 찾으며 나돈다. '도란도란' 주절거리는 건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다. 귀 기울여 들으니 "3월이면 날 보러 와요"라고 하는 것같다.

그렇다. 3월의 개울은 바쁘다. 봄눈 녹아 흐르는 맑은 물에는 상류에서 피는 산도화의 지는 꽃이 떠내려 오기도 한다. 옛 시에 '도화(桃花)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세라, 아이야 무릉(武陵)이 어드메뇨, 나는 옌가 하노라'고 했다. 나에게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계곡에 수량이 많아지면서 찾아오는 손님도 는다. 물까마귀, 해오라기, 뜸부기도 우리 계곡의 단골손님이다. 사람들은 원앙(鴛鴦)은 금실이 좋은 새로 안다. 이들은 3월이 되면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15~20개의 알을 낳고 암컷은 포란(抱卵)에 들어간다. 25~27일이 걸리는 이 기간에 수컷은 이웃의 예쁜 암 원앙을 꼬셔서 단 둘이 나의 개울로 온다. 여기가 저들의 '러브호텔'인 셈인가.

여름은 일년 중 개울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계절이다. 물! 물! 물!, 아우성에 가까운 물소리에 모처럼 서울서 공부를 하러 온 수필동인들이 서늘하고 시원한 개울가 정자에 자리했다가도 귀가 먹먹한 물소리에 두 손 들고 방으로 들어와 창과 문을 닫고서야 모임을 가질 수 있다. 물이 많아지면 거기에도 주인공이 있게 마련이다. 물고기들이다. 특급수에만 사는 버들치가 많다. 크기는 빙어만 하고 번식력이 왕성하다.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오니 누군가 낚시를 하고 있다. 낚은 고기가 5리터는 됨직한 통에 그득하다. 말없이 물에다 쏟았다. 대부분 살아서 달아났지만 그 발랄하던 녀석들이 하얀 배를 위로 하고 떠내려가는 놈이 오십 마리가 넘는다.

이웃에 사는 여동생, 수필가 현심(賢心)의 등단 작, '자연치(自燃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전략 designtimesp=3857> 이번에 우리집 2층에 머물고 있는 일행중 한명이 계곡에서 올라오는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이 개울물에도 산메기가 사나요?"

산메기라? 메기는 알아도 산메기는 낮선 이름이다.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니, 손바닥을 펴서 가운데 손가락 세 마디를 짚어 보이며 "아 요만한 고기 있잖아요."라고 한다.

버들치나 산천어를 말하는가 싶어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왜 물을까. 물의 맑기가 궁금한가. 어종의 분포를 알고 싶은가. 아니면 물고기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흥행한 이후로 토종 담수어를 기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 그런 부류의 사람인가. 그런데 그 모두가 아니었다.

"재미 삼아 잡아서 매운탕 끓여 먹으려구요."

여름에 눈만 떠다니는 것 같던 치어들이 이 가을 들어 자라서 성냥개비만해 졌다. 큰 놈들은 물 가운데를, 어린 놈들은 저들끼리 물가에서 헤엄치는 게 여간 신통하지 않다. 이 높은 산속까지 어떻게 올라왔을까.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나의 애틋한 마음을 전할 길은 없지만 애정 어린 눈길로 한참을 기다리면, 모여들어 먹이를 보챈다. 그런데 요것들을 잡아서 끓여 먹겠다니. 밉다. 정말 싫다. 이런 사람들과 한 하늘아래 산다는 게 난감하다.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번엔 거절을 해야겠다.…<후략 designtimesp=3868>.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