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우울한 세레나데

[ 음악에세이 ]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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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2월 21일(화) 00:00
유혜자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음악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이었다. 당시는 곡목을 모른 채 그의 현악4중주 1번의 2악장인 '안단테 칸타빌레'와 '백조의 호수' 등을 매일 들었다. 내가 골라들은 것은 아니고 9.28수복 후, 6.25전쟁 때 불타버린 고향에 돌아왔을 때 모차르트의 '소야곡' 슈만의 '꿈' 등과 함께 극장에서 울려나온 것이었다. 그 음악들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우리에게 위안이 되었고 이내 정이 들었다. 2, 3년 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 때에도 저녁때면 그 음악들이 듣고 싶어지곤 했다.

   
그때는 물론, 성장해서도 음반이 귀해서 그리워만 했었다. 방송사에 입사 후 레코드실에서 찾아볼 수 있었음은 행운이었다. 어느 음악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 채 짐작해서 틀어본 음악은 '안단테 칸타빌레'가 있는 음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곡을 찾던 중 좋은 음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로 전체 4악장인데 악장마다의 특징이 화려하거나 우울하여 강하게 차별되었다. 장중한 서주로 시작되는 1악장은 쾌활한 리듬과 낭만적 선율로 화려한데 2악장은 감미롭고 우아한 왈츠이다. 3악장은 작곡자가 '비가'라고 작곡자가 쓴 대로 슬프고, 4악장은 격정적인 무곡 같았다. 흔히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특징을 '화려하고 우울하다'고 한다. '화려한'것은 빛나고 아름다워 명랑에 가깝고 '우울한'것은 근심이나 걱정이 있어 명랑하지 못한 것이다. 상반되는 '화려'와 '우울'을 함께 지니다니 얼핏 이해가 안 되었다. 화려와 우울은 천당과 지옥만큼 상반되지는 않아도 온탕과 냉탕만큼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화려하고 우울함'에 동의할 수가 없었는데 복합적인 느낌을 주는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를 듣는 중에 저절로 공감하게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물이 많았던 차이코프스키는 남다른 불운을 겪었다. 그리고 19세기 러시아왕조, 귀족들의 횡포와 분노하는 민중 등 암울한 시대에 살았다. 그의 작품들 속에 농도 짙은 감상이 담겨 있는 것은 그의 감성과 불운, 사회상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의 첫 번째 불행은 열네살 때 겪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자신의 음악적인 소양을 길러주고 헌신적이었던 어머니가 콜레라로 돌아가서 큰 충격을 받았고 두 번째 불운은 약혼했던 프랑스 여가수의 배신이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버려 상처를 받았다. 그후 열렬하게 청혼해 온 제자와 결혼했는데, 아내 밀류코바는 지성이 부족하고 성격이상자였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결혼으로 고쳐보려 했는데 실패하자 자살을 시도했다. 폐렴에 걸리려고 9월의 밤, 허리까지 올라오는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오래 몸을 담갔으나 뜻대로 안된 그는 페테르스부르크에 있는 동생에게 달려가 버렸다.

차이코프스키는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와 스위스에서 마음을 달랬는데 그때가 정신적으로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건강을 회복한 그는 정열적으로 작곡해서 3,4년 동안 '에프게니 오네긴', '바이올린협주곡', '이탈리아 기상곡'과 함께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작곡한 것이다.
절망과 불행에 철저히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참된 의미를 알 수 없으리라. 그는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우울과 고통을 음악이란 언어로 작곡을 했다. 고통은 승화되어 화려하게 그의 음악에 무늬가 되어 듣는 이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그의 고통과 빛깔은 다르지만 불안과 가난을 안겨준 6.25의 상처, 객지에서의 향수, 직장에서 좌절감에 빠졌을 때 위안을 준 음악들. '안단테 칸타빌레'를 찾으려다 알게 된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를 생각하면 초콜릿의 맛처럼 달콤하고 쌉쌀하다. 어차피 세상은 화려한 듯해도 우울한 면이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처럼 양면적, 복합적인 것이 아닌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서구적인 세련미에 러시아적인 우수가 깔린 매력으로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래 전에 만났던 '현악을 위한 세레나데'는 그리운 날의 추억과 함께 내 젊은 날의 화려하고 우울했던 초상도 만날 수 있어서 자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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