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빨리가고 일년은 더디간다

[ 연재 ] 데스크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6년 02월 14일(화) 00:00
하루는 후딱 지나가는데 일년은 늦게 간다면 젊은이고, 거꾸로 일년은 빨리 가는데 하루가 더디게 가면 이는 나이가 든 증거란다. 젊은이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로운 감각이 솟아나다보니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는 반면에, 지나온 일년을 되돌아보면 워낙 사건이 많아서인지 훨씬 긴 세월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반면 나이 든 사람은 할 일이 없고 과거의 것을 반복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하루는 길게 느껴지지만 일년은 반대로 후딱 지나가버리는 반대의 현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기자는 2002년 6월을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보냈다. 아들 딸 모두 상암월드컵 경기장이다 시청앞 거리응원이다 정신없이 쏘다닐 때도 집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2001년 9월 뜻밖에 찾아온 뇌출혈로 입원 가료한 후 출근과 병원 신세를 반복하다가 회사의 배려로 얻은 6개월간의 병가 휴직중이었기에 몸은 겨우 추스렸어도 거리를 쏘다니며 들뜬 기분을 발산할 처지가 못되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16강에 오르고 8강에 이어 4강에 오르던 날도 혼자 텅빈 거실 TV 앞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격에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을 뿐이다.

4년이 지나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오르고 평가전을 통해 승전보를 전해 오자 다시 그날의 감격이 새록새록 밀려온다. 친구들을 만나면 우린 지난 4년 동안 무슨 재미로 살았나 하는 얘기를 자주 하게 된다. 어떤 친구는 마치 2002년에서 '쓩'하고 2006년으로 날아온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그건 네가 늙어간다는 증거야"라고 말하다가 문득 우리 사회 전체가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4년 동안 매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길을 오가고, 정치권이나 교회나 비슷비슷한 주제를 놓고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네 편 내 편으로 나뉘어 똑같은 논리로 공박을 거듭하는 단조로운 일상.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루하루는 지루하게 살아가는 대신 일년은 쏜살같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여대 3학년인 딸은 작년까지도 독일월드컵에 가야한다며 용돈을 모으고 아르바이트에 열을 올리더니 어느샌가 잠잠해졌다. 눈치를 보니 월드컵이 아니라 졸업후 취업난을 대비하는 실속있는 계획으로 방향 전환을 한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하루는 더디고 일년은 빨리가는' 기차에 이제 너두 어쩔 수 없이 올라탔구나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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