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새해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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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1월 24일(화) 00:00
   
장돈식

병술년, 새해를 맞는 마음이 산뜻하다. 앞으로 살아갈 남은 날들 중에서 가장 젊은 연령으로 맞는 신년이다. 예년처럼 제주도에서 겨울을 지내다가 세모(歲暮)에 잠시 산방으로 왔다. 내가 챙겨야 할 산방둘레의 식구들을 돌보아야 한다.

야생의 온갖 큰 동물과 작은 짐승들의 겨울나기 상황과 텃새들과 나그네새, 낙엽이 된 후에 손을 봐야하는 나무들과 푸새들이 있다. 벌써 많이 늦었다. 저들의 월동에 너무 무심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다. 그것은 작년의 아픈 기억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멍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연은 지난 겨울, 단골 의사의 권유로 추운 산방을 피해 겨울이 한결 따뜻한 섬, 제주도에 내처 있다가 늦게 돌아왔었다. 방그러니 윗 편 골짜기에 사는 배고픈 너구리가 나를 찾아 산방둘레까지 내려왔다가 굶어죽은 불상사가 있었다.

본래 저들은 이 방그러니의 아랫녘에서 살았으나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지금은 더 높은 곳으로 옮겨 갔다. 산이란 대개 높이 올라갈수록 물과 먹거리가 귀해지고 겨울이면 더 춥다. 삶의 조건이 열악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창세 이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저들의 터전을 빼앗은 우리가 그네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올해는 새해를 기해 산방으로 돌아왔다. 며칠 머물면서 동면(冬眠)을 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먹이를 주어야 한다. 이전에는 백운산 7부 능선에 있는 전망대 정자에다 상당량의 먹이를 가져다가 놔 주었는데 내가 몸이 불편해지면서부터는 시(市) 산림과에서 하는 줄 알고 있다. 그대신 산방과 근처에서 나를 의지 삼아 사는 이웃들을 돌봐야한다.

돌담 속에 사는 똘똘이라서 '담돌이'라고 이름지어 준 다람쥐네 가족이 있다. 이 녀석들이 제일 즐기는 먹이는 밤과 도토리인데 그 열매들이 영그는 계절에는 저들 스스로 부지런히 모은다. 놀라운 것은 나무의 열매가 개울물에 떨어지면 평소에는 싫어하는 물속으로 자맥질을 해서라도 건져가는 극성을 부린다. 그러다가 지난해 가을부터는 여기에 청설모가 나타났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식성이 비슷해서 경쟁관계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은 담돌이네를 못살게 군다. 몸통이 다람쥐보다 훨씬 크다.

그 녀석이 나타난 다음부터 담돌이네 식구 수가 줄었다. 수세(守勢)의 다람쥐는 내가 거처하는 정자 아주 가까이 잔디밭에다 구멍을 파고 들어가 한 여름과 가을을 지냈다. 그렇게 사람을 의지하려 든다. 11월도 하순경에야 겨울을 나기 위해 굴을 좀더 깊이 팔 수 있는 가까운 비탈로 이사를 했다. 쌓인 눈을 헤집고 들여다본다. 지금은 겨울잠에 빠져 있다. 새(鳥)식구들도 챙겨야 한다. 마음에 걸리는 새는 산비둘기다. 여기서는 겨울에 가장 먼저 굶주리는 새다. 높은 산까지 먹이를 지고 올라가 주던 때는 얼마나 배가 고픈지 겁 많은 녀석들이 사람이 있어도 가까이 날아와 강냉이 알갱이를 맛있게 먹었다.

우선 내 산방 터돌이에 있는 작은 새들을 챙겨야 한다. 여기에 대물려 번식하며 사는 박새, 딱새, 뱁새 등 텃새는 물론 나그네새인 지빠귀 같은 새들 수 백 마리가 날아든다. 이층 베란다에다 먹이를 듬뿍 쏟아두면 된다. 가을부터 초겨울에는 산야에서 풀씨 따위로 연명을 하나 겨울이 깊어지면 굶주리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먹이는 풍성히 주되 손바닥이나 사람 가까이에서 먹게 한다던지 어깨에 앉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길들이기는 어렵지 않으나 사람을 겁낼 줄 모르는 새는 어디서 누구에게 잡힐지 모른다.

올해는 이층이 없어졌기에 눈이 내려도 덮이지 않고 겨울에는 비워두는 정자에다 먹이를 준다. 큰 새들을 위해 농사지은 옥수수 부순 것과 작은 놈들이 즐기는, 역시 심어 가꾼 기장이다. 기장은 오곡(五穀)중의 하나이다. 같은 이웃이면서도 새들을 겁주는 수캐, 온달이와 암캐 반달이를 묶으면서 평생을 제 멋대로 돌아다니던 집의 개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새들의 세계에도 정글의 법칙이 있다. 맨 먼저 산까치, 산비둘기 등 큰새들이 그 다음 딱새, 박새, 뱁새 등도 온다. 저들에게는 올 새해 벽두에 진수성찬(珍羞盛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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