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자극이 문제 키웠다

[ 교계 ] 양화진, 한 지붕 두 가족, '유니온-백주년' 대립

김보현 기자 bhkim@kidokongbo.com
2005년 12월 29일(목) 00:00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지공원을 찾은 순례객들의 모습.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5년, 한국교회는 선교 1백주년을 맞으면서 우리의 순교 신앙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용인 순교자기념관을 세웠고, 인천에는 첫 공식 선교사의 입국을 기념하는 탑을 건립했다. 이와 동시에 복음으로 빚진 자된 심정으로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이들의 묘역을 단장하고 또 마땅한 예배 처소가 없던 이들을 위해 선교기념관을 건립, 예배 처소로 삼게 함으로써 국경을 초월한 동역자로 우호 관계를 모처럼 실천하게 됐다.

복음을 전해주었던 이국의 선구자들과 또 복음을 받아들여 1백년 만에 커다란 거목으로 자라게 된 한국교회가 아름답게 만났던 그 역사적인 현장, '양화진'이 다시 20년이 흐른 뒤 갈등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안타까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교회백주년기념사업을 주요 교단 지도자들과 기독실업이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었고 지금도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며 여러 유적지를 관리 감독에 힘써 온 백주년기념사업위원회(이사장:강원용 사무총장:김경래, 이하 백주년)는 선교 1백20주년을 앞두고 의미있는 기념사업의 준비와 함께 개발 뒤 지속적인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온 현장들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관리 방안 마련이 주요 과제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다른 유적지와 달리 서울 시내에 위치한 양화진에 대해서는 '백주년'이 평소에 희망해 오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인주변 지역에 대한 공원화 사업을 관할구청이 마포구가 주동이 되어 거액이 예산을 투입해 시행하게 됐다. 또한 지속적인 관리가 절실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지 공원'에 대해서도 보다 체계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이와 관련해 '백주년'은 "특정 교파에 속한 교회나, 한 두 군데의 대형 교회에 이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독립적인 초교파교회를 설립, 관리에 대한 의무와 권한을 이양키로 방침을 마련한 바 있다"고 백주년 사무총장 김경래장로는 설명했다. 실제적으로 지난 4월부터 교계에는 '백주년기념교회(이하 기념교회)가 관할 구청의 협력 속에 세워지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고, 일반 교회 목회 중단을 선언한 바 있는 이재철목사가 백주년 관계자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백주년기념교회의 담임목회자 직을 수락, 공식적인 출발이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이 때를 전후로 기존 선교기념관을 예배 처소로 사용해 온 '서울유니온교회'(프린스목사 시무, 이하 유니온)와 설립 이후 단시일 내에 중형교회로 성장하게 된 '기념교회'간의 불편한 동거로 인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백주년'측은 지난 6개월 간의 과정 동안 '유니온'측이 사실 무근의 소문을 유포했다는 불편한 감정을 명시하며, "기존의 예배 시간 이외에 일체의 관리권에 대한 박탈"을 유니온 측에 통고한 바 있으며, '유니온'측 역시 "당초 약속과 달리 증여 당시의 신뢰 관계를 훼손하며 법적 권리만을 내세운" '백주년'측의 입장에 유감을 표하며, "'기념교회' 역시 임시 사용을 요청했던 바와 같이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예배 처소를 찾아 떠나줄 것"을 직간접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간 기념교회 설립 과정에 대해 알려진 바는  '기념교회는 양화진 인근에 부지를 마련, 홍보관을 겸한 건물을 건축하고, 그곳에 교회가 예배를 드리게 되며, 수개월 정도가 소요될 기간 동안 유니온 교회를 임시 예배 처소로 사용한다'는 것으로 이는 유니온 교회가 밝힌 설명과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7월 기념교회 설립 이후 달라진 상황은 기념교회가 초고속 성당을 거듭하며 당초 교회 설립에 깊이 간여했던 백주년 이사회 관계자들의 예상을 넘어 5백여 명 선에서 출발한 교회 인원이 줄지 않고 12월에 들어서면서 9백 명을 넘어서게 됐다는 점을 첫번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 지붕 두 가족 같이 선교기념관을 함께 사용하게 된 '유니온'과 '기념교회' 양측의 감정적 요인도 적지 않은 갈등의 원인이 됐다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선교기념관은 1백년 전 선교사들과 외국인들 중심으로 출발된 이후 마땅한 독자적 예배당 없이 태화관과 시내 호텔들을 전전하며 예배를 가져 온 유니온교회의 규모를 감안 예배실 규모가 약 2백석 남짓의 작은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토록 좁은 시설에 비록 2부로 진행되기는 하여도 1천 명 가까운 교인들이 이용한다는 데에는 여러가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고 현재 예배당 입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주방시설 부족으로 인해 임시 천막이 설치돼 교인들의 친교를 위한 음식 장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또 한가지 변수로 등장한 것이 당초 추진했던 홍보관 건립에 차질이 발생한 것.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백주년'측에서 기념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영구적인 예배 장소로 확보하기 위한 수순을 밟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 전면의 '봉헌기념동판'이 제거되고 주변의 표지판들이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선교사 묘지공원'으로 교체되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유니온' 측에서는 모종의 의도를 가진 행사라는 의혹과 일방적 처사에 대한 문제가 강력하게 제기됐다.

1백20년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뒤집어 서구교회의 선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백주년을 기념하는 교회의 급성장은 주위의 우려와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교회에 새로운 성장의 전형으로도 평가받을 만한 요소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거룩하고 하나된 교회보다 현재 양 교회의 갈등과 대립은 소유권과 거주권 간의 단순한 다툼으로 비화되거나, 저무는 선교 1백20년에 있어서는 안될 재난으로 비화될까 우려를 낳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