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를 기다리며

[ 헬로티쳐 ] 장남기목사의교육칼럼 '헬로티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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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2일(목) 00:00
벌써 백화점과 각 상점은 성탄절 특수를 기대하며 손님들의 손과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갖가지 장식으로 현란하게 치장을 하였다. 아이들도 벌써부터 성탄절에 무슨 선물을 사줄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슬그머니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한다.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성탄선물을 준비해 1~2 주일 전에 성탄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선물을 보기 좋게 펼쳐 놓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줄 선물은 포장지 속에 숨겨져 있다.

아이들이 그 선물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면 성탄절 새벽까지 기다려야 한다. 새벽이 되면,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따뜻한 우유에 코코아를 넣어 핫초코(hot chocolate) 우유를 만들고 맛있는 과자를 준비해 우리 부부를 깨운다. 온 식구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아이들은 2주 정도를 간절히 기다려왔던 선물을 열어보고 기뻐하며 "감사합니다"란 말을 한다. 이것이 언제부턴가 우리 집의 성탄절 전통이 되고 말았다.

대강절을 지나면서 이 기간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많은 단어가 있겠지만, '기다림'이란 단어가 가장 성탄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고 생각된다. 기다림에는 막연함이 아니라 기다림의 대상과 목적이 있다. 또한 기다림은 당장의 만족이 아니라 시간을 채운 다음 가슴에 기다림에 합당한 열매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요즘 우리들의 삶은 기다림이 없어졌다. 요즘의 문화는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빛의 속도'가 지배하는 문화이다. 따라서 기다림은 더 이상 우리들의 삶에서 의미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나 과거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헨리 나우웬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성경 속의 신앙의 거목들은 기다림에 익숙했던 사람들이다.

마른 하늘에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의 조롱을 참아가며 방주를 지은 노아도 기다림에 대해서 우리에게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도 기다림의 대가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인간적이며 생리적인 한계를 넘어 이루어지기까지 실수와 오판 속에서 그 기다림을 이어 나아갔다. 모세라는 믿음의 거목은 어떤가? 그도 기다림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존재의 근거가 뒤바뀐 기다림 속에서 그는 결국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을 받는 기다림의 미학을 이루어낸 사람이 되었다. 시므온은 어떤가? 나이 많았지만 자신이 기다려야만 하는 한 사람 '이스라엘의 위로'를 만나길 소망하며 어두움의 세상에서 인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가 바로 그렇게 기다리던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이렇게 노래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대강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간이다. 그 기다림 속에서 문화의 때가 잔뜩 묻어있는 우리들을 정결하게 만들자. 빨리 빨리보다는 가슴 시리도록 오랫동안 아기 예수를 기다려보자. 빛으로 오신 예수가 바로 저만치서 우리 앞으로 걸어오신다.

장남기
<美 찬양마을장로교회 담임 designtimesp=2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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