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자작나무

[ 데스크창 ]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12월 13일(화) 00:00
영화 '닥터 지바고'의 하얀 자작나무 숲과 영화 '차이코프스키'에서 자작나무 숲길을 달리는 마차를 기억하는가. 봄에는 물 오르는 신록이, 여름에는 그 푸르름이, 가을에는 황금색으로 물드는, 그리고 겨울에는 서리 내린 자태가 어찌 그리도 고울 수 있을까.

러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흰 껍질에 검은 반점이 알록달록한 자작나무를 흔히 보게 된다. 이 자작나무는 수피 내부에 지방 성분이 많아 추운 지방에서 잘 견디고 나무 껍질을 태울 때 '자작 자작'하는 소리가 난다 하여 자작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자작나무의 눈같이 하얀 빛깔은 숲속의 귀족이요 여왕으로 불려지는데 한자로는 華, 또는 樺로도 쓴다. 결혼식을 화촉을 밝힌다고 말하는 것은 예전에는 촛불이 없어서 자작나무의 껍질에 불을 붙여 촛불 대용으로 쓴 것을 일컫는 말이다. 화촉을 밝힌다고 하면 결혼식을 말하는 것이고 즉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나는 불로 어둠을 밝혀 행복을 부른다는 것이라고 한다.

자작나무는 고로쇠와 함께 봄에 줄기에 상처를 내어 흘러나오는 수액을 받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어 온 오랜 풍습이 오늘날에도 전래되고 있다. 일본의 아이누족도 산속에서 물이 없을 때면 자작나무 밑에 불을 피우고 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아 취사에 썼다고도 한다.

이 자작나무가 죽으면서 자라는 버섯이 차가버섯이다. 러시아에서는 16세기경부터 불치병을 치료하는 비약으로 전해내려 온 차가버섯은 1951년 소련 과학아카데미 코마로프과학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여, 현재 러시아에서는 공식적인 암치료 약재로 인정받고 있다.

차가버섯에는 여러 가지 물질이 들어 있는데, 특히 많이 함유되어 있는 베타글루칸은 혈액 속의 지방과 당, 콜레스테롤의 수치를 감소시키고, 면역력을 강화시켜 성인병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암과 당뇨병, 고혈압 등도 자연치유될 수 있도록 인체를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줄기에 상처를 내어 그 수액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고, 죽어가며 썩어진 줄기에서 자란 버섯이 각종 성인병과 암 등 불치병의 치료제로 쓰인다니 아무리 흔한 나무라도 참으로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같지 않은 사람, 사람답지 못한 사람, 그래서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도 아무 쓸모없이 썩어지는 사람보다 한 그루의 나무가 더욱 귀히 여겨지는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