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사회,복지목회를 원한다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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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30일(수) 00:00
   
정장복/한일장신대학교 총장
정장복
한일장신대학교 총장

지상에 있는 교회는 그 시대의 환경과 그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전쟁,기근,자연의 재해가 지속되는 곳에서는 종말론적인 신학이 태동한다. 이러한 경우는 기독교의 초기 교회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한국전쟁과 가난이 지배했던 시절에 계시록 강해가 강단을 휩쓸었던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였다. 신앙의 자유 없이 억압과 탄압 속에서 국민들이 시달려야했던 정치 또는 종교 체제에서는 해방신학이 등장하였다. 남미에서 일어났던 이러한 신학은 억압을 받는 민족들이나 교회들이 반갑게 영입할 수밖에 없는 신학이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의 6,70년대와 같이 경제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특수층이 인권을 짓밟고,다수가 한에 맺힌 삶의 현장에서 시달릴 때 그 안에서 민중신학이 태동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학의 흐름과 상관없이 오직 복음에 입각하여 목회를 하는 교회들이 있는가 하면 신학의 변천에 편승하여 목회를 하고 교인들의 의식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는 교회들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때로는 보수와 비보수라는 분수령을 만들게 되고 수적인 성장과 비성장의 논리를 불러일으킨다. 실질적으로 한국교회는 대부분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학의 사조가 어떻게 흐르더라도 오직 말씀 중심의 교회로 그 입지와 노선을 뚜렷이 함으로써 오늘의 한국교회가 건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우리 사회와 국가 시책을 보면서 주창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것은 어떤 새로운 신학의 노선이 아니다. 성경의 진리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교회가 마땅히 지향했어야 할 일들로 이제야 국가의 지위 향상과 함께 정부에서 착수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국민의 복지사회를 향한 관심과 국가시책을 보면서 설계해야할 복지목회에 대한 우리의 목회관의 변화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진국 31개국으로 구성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의 회원국이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난 국민의 정부 때부터 우리나라의 정책이 복지사회 구현에 눈을 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일을 위하여 정부는 정책과 예산을 대폭적으로 늘려 복지시설의 확대와 그 활동에 대단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럴 때 교회가 '예수천당'만을 외치고 있을 수는 없다. 사회복지란 성경에서부터 출발한 사랑과 나눔의 사상을 기독교 국가에서 시작하여 넓혀가는 복음의 실천이다. 복음의 확산을 위한 큰 도구이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새로운 신학의 주창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교와 구제를 실현하는 사랑의 복음에 의존한 것이다.

이제 교회가 눈을 떠야 할 복지목회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안아야할 시대적인 과업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서구의 복지사업처럼 기독교 정신만 있을 뿐 교회와 무관한 복지목회가 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지향하는 복지목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가꾸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한국교회의 복지목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확장되는 새롭고 신선한 세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앞에 열린 복지사회에서 복음이 살아있는 현장의 복지목회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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