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섬기는 말씀 중심교회"

[ 우리교회 ] 감리교 텃밭 위에 세운 장로교 신앙 전통, 강화성광교회

표현모 기자 hmpyo@kidokongbo.com
2005년 11월 29일(화) 00:00
강화도는 폐쇄적이고 토속신앙적인 '섬'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된 1890년대부터 복음이 들어갔을 정도로 기독교의 전통이 뿌리깊은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규모의 섬이다.

   
강화성광교회 전경.
단군신화가 깃든 마니산의 존재는 주민들에게 기복신앙의 뿌리를 마니산의 높이만큼이나 깊이 뿌리박히게 했지만 복음은 불과 1백여 년만에 그 깊은 토속신앙의 뿌리를 상당 부분 뽑아버렸다.

현재 강화도에는 6만4천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교회는 1백6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전국 제일의 교세를 자랑한다는 본교단도 이곳에서는 기타교단으로 분류될 정도로 교세가 취약한 지역이다.

   
담임 천병선목사.
현재 강화도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교회가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력을 그대로 이어받아 1백20여 개가 있으며 대한성공회가 그 다음으로 12개, 가톨릭 성당이 12개, 그리고 기타교단 소속교회가 약 25개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척박한 장로교 불모지에 복음의 등대처럼 우뚝 서 있는 본교단 소속 교회가 있다. 바로 강화성광교회(천병선목사 시무)가 그곳이다.

강화성광교회의 건물 위쪽에는 '장로교강화성광교회'라는 글씨가 촌스러울만치 큰 글씨로 새겨져 있다. 글씨도 크고 교회도 언덕에 위치해있어 멀리서도 그 글씨는 또렷하게 보일 정도다. 이러한 배경에는 필히 그 뒤에 사연이 있는 법.

담임 천병선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감리교의 텃세가 워낙 심해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우리교회를 감리교 소속으로 옮기게 하려고 많은 유혹과 압력이 있었다"며 "그러나 장로교의 질서잡히고 순수한 신앙이 이 강화도에 꼭 필요했기 때문에 한번도 흔들림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점을 명확하게 하려고 교회에 큰 글씨를 박아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1958년 설립되어 강화성광교회가 감리교 텃밭에서 2번째 규모의 교회로 성장하기까지는 무수한 견제와 방해를 견뎌야만 했다. 강화성광교회에서 전도를 하러 나가면 타교회에서 차를 막아놓기도 하고 교인이 방을 구할 때는 교회를 옮기지 않으면 방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을 정도. 거기다가 11만명이었던 인구마저 6만4천여 명으로 줄어들면서 시기시기마다 온갖 악재들이 교회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환경미화원 위로회 광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성광교회는 묵묵하게 장로교 전통의 신앙을 지키며 지역봉사에 힘썼다. 지역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등 불우이웃을 돌보는데 앞장서기 시작했고 경찰 및 공무원 선교에도 힘을 쏟았다. 또한 토속신앙의 영향과 이단 등의 영향으로 다소 기복적이던 교회를 천 목사의 지도아래 말씀 중심의 교회로 탈바꿈해나가며 복음적인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강화성광교회의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맺어 한때는 출석교인이 7백명에 달할 정도로 그 규모가 성장을 했다.

지난 1979년도에 부임해 지금까지 28년간 목회를 하며 교회의 성장과 정착을 이루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천병선목사는 "부임하기 전 4명의 목회자가 모두 2년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교회가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단의 영향으로 교인들이 신유 은사와 이적 등의 신비주의에 너무 치중되어 있었다"고 회고하고 "초기부터 신앙의 기본인 말씀으로 돌아가 전도, 헌금, 기도 등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가르치며 교회의 기틀을 잡아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인터뷰 중에도 "교인을 말씀에 거하게 하는 것이 내 사명"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강조할 정도로 성경에 기반을 둔 목회를 실천해 왔다. 그는 교회 부임 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기도해서 응답받는 교회, 말씀 순종해서 축복받는 교회, 바로 가르쳐서 부흥하는 교회'를 모토로 장로교의 신앙을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천 목사의 노력은 교회의 체질변화를 가져왔고 그 체질변화는 다시 자연스럽게 교회 성장으로 이어졌다. 강화성광교회는 천 목사 부임당시 1백명 가량 출석하던 교인들이 재적 1천1백명으로 성장했으며 1988년에는 지금의 예배당인 6백30평 건물을 신축하기도 했다.

강화성광교회는 내적인 교회성장에 머물지 않고 지역봉사와 선교에도 힘을 쏟게 됐다. 현재 동교회는 정기적으로 독거노인 위로 예배 및 식사대접을 하고 있으며 환경지킴이 및 환경 미화원을 위한 위로예배를 드리고 겨울철에는 방한복과 장화를 선물하고 있다. 또한 65세 노인들에게 이미용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수족을 못쓰는 장애인들을 위한 침 시술 봉사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외에도 온세계선교회, 범양선교회, 북방선교회 등 선교기관들과 협력, 필리핀 중국 등지에 협력 선교를 전개하고 있기도 하다. 교단 차원의 화해를 위해서도 강화기독교연합회 활동에 활발하게 참가해 6.25기념예배, 부활주일예배 등을 함께 기획하고 추진해 오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착과 성장에도 불구하고 강화성광교회에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 목사는 "지역의 인구감소가 너무 심해 교회의 대응책이 시급하고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현실에 맞는 목회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더 활발해야 한다"고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목사는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말씀 중심'이라는 기본 원칙에 흔들림 없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교회가 정착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이 기본 원칙만 지킨다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목회를 마무리할 시점이지만 교육관 완공과 해외에 교회개척 등 꼭 이루고 싶은 몇 가지 일들이 있다"며 포부를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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