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찬가

[ 데스크창 ] 데스크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11월 22일(화) 00:00
연탄을 지하실이나 처마밑에 가지런히 줄지어 들여놓으면 한겨울을 날 수 있다는 왠지 모를 자신감 마저 들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창고에 연탄을 들여놓을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그날 그날 연탄 한두장을 사다 때는 데 만족해야 했다. 구멍에 새끼줄을 끼워 밑둥을 매듭지은 연탄 한 덩어리씩을 양손에 들고 비탈길을 올라 귀가하던 가장들의 모습을 우리는 아직 잊지 못한다.

연탄을 때 본 사람은 연탄불 갈기가 얼마나 고역인지 잘 안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에 단잠을 깨야 하는 것은 고사하고 뜨거워진 윗 불과 아랫 불을 떼어내기 위해 식칼이 동원되기도 했다. 귀찮아서 연탄집게로 대충 두들기다가 시뻘건 연탄이 아예 부서져버려 곤혹을 치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한 위, 아래의 연탄 구멍을 맞추기 위해서는 오래 숨을 참고 견뎌야 하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연탄의 열기 때문에 연탄집게를 잡은 손이 참을 수 없을만큼 뜨거워지고 참은 숨은 토할 듯 올라와 턱을 넘던 기억들. 그러다 간신히 연탄구멍을 맞추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대충 올려 놨다가 얼마 안가서 연탄불이 꺼지는 날이면 밤새 오돌오돌 떨면서 추위를 오로지 몸뚱아리 체온 하나로 감당해야 했다.

무엇보다 연탄에 대한 기억은 슬프기 짝이 없다. 날이 흐리고 꾸물거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온가족이 가스에 중독되기 십상이었다. 그 당시 신문 지상엔 "연탄가스로 일가족 중독사"라는 식의 기사가 그칠 줄 몰랐다. 여하튼 죽기를 무릅쓰고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한겨울에 연탄을 땠다. 모두 그렇게들 살았다. 모진 세월이었지만 그보다 몇 배는 모질디 모진 목숨들이 살아남아 있는 셈이다.

구멍이 뚫려있어 '구공탄'이라고 불리고 구멍이 19개라고 해서 19공탄이라고도 불렸던 연탄이 가스보일러나 기름보일러에 밀려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고 유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면서 다시 사랑을 받고 있다. IMF 이후 우리 사회에 극빈계층이 늘어나면서 연탄에 다시 삶을 의존해야 하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허기복목사가 강원도 원주에서 처음 시작한 '연탄은행'은 이제 전국적인 조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임받고 있다. 본교단 사회봉사부도 이에 발맞춰 오는 30일부터 연탄나누기 행사 출범식을 갖는다고 한다.

시인 안도현은 연탄에 대해 언젠가 이렇게 노래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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