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의 땅 염산에 선 기독교인 순교탑

[ 믿음으로떠나는여행 ] 믿음으로떠나는여행(27)-77인의 순교자들을 찾아서 ①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5년 11월 02일(수) 00:00
거룩한 땅을 향한 발돋움은 순례자들을 겸허하게 만든다. 순교의 피가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는 생각에 그 감사함이란 이루말할 수 없다. 이곳 영광군 염산면에 이르면 이러한 마음은 최고조에 이른다. 주님을 위해서 한 사람도 아닌 성도 77인이 한꺼번에 순교를 마다하지 않은 이 거룩한 땅에 나는 모세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 있다.

   
순교자 명단이 적혀있는 순교비 뒤로 염산교회가 보인다.
순례 여정 상 언제나 염산은 저녁 나절에 도착하게 된다. 이 시간의 염산의 하늘은 가히 환상적이다. 붉은 노을이 설도 포구에 비치어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가을녘에는 대지를 뒤덮은 벼들이 바람에 넘실대며 춤을 춘다. 이러한 아름다움 속에서라면 어떠한 소란도 없었을 것 같지만, 1950년 가을의 염산은 순교의 바람으로 마을 전체가 들썩거렸다. 한 명도 아닌 77인, 당시 염산교회 교인의 3분의 2가 순교의 길을 걸은 것이다.

지금도 설도 포구 앞에서 서면 그 때의 그 장면이 그려지는 듯하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로 나가기 원합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들을 지켜준 순교 정신. 이는 이 거룩한 땅에선 순례자의 가슴에 뜨거운 감격을 일깨우고 있다.

염산교회는 1939년에 세워져 염광 지역에 복음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영광은 종교적으로 영적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오래 전에 법성 포구를 통해 불교가 유입되었을 뿐 아니라, 백수읍 길용리에서는 원불교의 교조가 태어났으니 가히 종교적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원불교는 이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고, 그래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간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비율이 57.5퍼센트인데 비하여, 원불교가 11.3퍼센트로 그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교조의 탄생지라 하여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그 세력이 대단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영광 염산교회는 기독교 순교자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순교 기념 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2천여 평의 종교용지를 마련하고, 최근에는 기독교인 순교탑을 영광군의 지원을 받아 완공하기도 하였다.

이 기독교인 순교탑 앞에 서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오늘날 작은 시험에도 쓰러지는 크리스찬들에게 이렇게 담대한 믿음의 선조가 있다는 사실이 실로 자랑스럽다. 기독교 순교탑이 서 있는 설도 포구는 지금도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하는 곳이다. 그 앞으로 젓갈 판매점들이 즐비하다. 아마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광장에 서 있는 이 탑의 의미를 모르겠지만, 이곳을 찾은 순례객들에게 있어서는 그 옛날 복음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순교 정신을 마음 속에 되새기는 성지인 것이다.

설도 포구를 지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염산교회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최근에 세워진 안내문을 통해 순교기념관 가는 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언덕을 타고 오르면 눈 앞에 아름다운 염산교회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교회 앞으로 순교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기념관 옆으로 큰 비석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순교기념비이다. 이 비에는 순교자 77인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염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태균 목사는 최근 순례객들을 위하여 염산교회의 역사를 영상으로 제작하여 대형 화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화면을 통해 염산교회의 순교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비록 큰 예산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지만 순교 정신을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염산교회의 노력이 빛나는 부분이다. <계속 designtimesp=14802>
박 귀 용 목사
/ 누가성지교육원 ㆍ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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