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문화의 대안, 수목장이 떠오른다

[ 교계 ] 산림훼손 막고 환경친화적 장묘문화로 인식 확산, 교회관심 필요

안홍철 기자 hcahn@kidokongbo.com
2005년 10월 21일(금) 00:00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서울시의 1.6 배나 되는 엄청난 규모지만 해가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어 산림 파괴의 주 요인이 되고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묘지 면적은 국토(남한) 면적 9만9천8백제곱킬로미터의 1퍼센트인 9백82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있으며 이것은 서울시 면적(6백5제곱킬로미터)의 1.6배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서,매년 20여만 기의 분묘가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해마다 여의도만한 땅덩어리가 묘지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은 앞으로 2년,수도권은 5년,전국적으로는 10년 내외에 집단 묘지의 공급이 한계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계속 이런 추세로 매장식 장례를 치른다면 결국엔 '전 국토의 묘지화'가 될 것이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산림훼손을 막고 환경친화적인 장묘문화를 확산시키자는 취지로 나무 밑에 골분을 묻어주는 '수목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무 밑에 골분을 묻는 수목장은 산림에 전혀 해가 없고 사람과 나무가 공존한다는 의미도 커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수목장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고려대 교수를 지낸 원로 임학자 김장수박사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지면서부터. 평생 나무를 연구하며 살았던 노교수가 자신의 학교 농업연습림의 50년생 참나무 아래 묻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것. 그 나무에는 '김장수 할아버지 나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그런가 하면 올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별세 목회자 이중표목사도 자신이 시무한 한신교회 분당성전 뜰에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그 나무는 이목사의 영혼을 이어가는 영생목(永生木)이 된 것이다.

수목장이란 시신을 화장해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자연친화적 장묘방식의 하나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장 형태로 사람과 나무가 상생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울타리나 비석 등 인공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으며 '아무개 할아버지 나무'란 작은 팻말만을 남긴다. 산림훼손이 전혀 없으며 벌초 등 무덤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생전에 나무를 지정,관리하는 산림보호의 장점도 갖고 있다. 스위스와 독일,일본,영국 등 수목장 선진국에서는 장묘 개선책의 하나로 수목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죽은 사람을 장례하는 법은 환경과 문화, 전통에 따라서 매장과 화장,수장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매장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최근 화장법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에서 화장문화가 확산되면서 납골묘를 통한 장묘문화가 제시되고 있지만 이는 규모만 작아졌을 뿐 여전히 산림훼손 등 자연파괴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화장 후 유골을 보관하는 납골묘나 납골당 같은 시설도 2012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목장은 환경에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며 죽어서도 다른 생명을 이롭게 한다는 생명중시 사상이 담겨 있다. 유골을 산이나 강 등에 흩뿌리는 산골(散骨) 방식과 매장의 장점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자연훼손은 최소화하면서 후손에게는 조상의 유골과 나무를 보존한다는 자긍심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물론 벌초 등 별도의 관리부담도 없다. 그야말로 묘지난 해소와 환경보호라는 일석이조의 좋은 장묘문화인 셈이다.

평양노회 온누리교회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에 올 1월 3천3백여평 규모의 온누리가족나무동산이라는 산골묘지를 만들기 시작해 12월 말 완공 예정이다. 교인만 이용할 수 있는 이 묘지는 전체를 3평씩 나눠 1천여 개의 가족묘지로 조성될 예정. 가족묘 중앙에 심어진 나무 밑에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최대 10여기를 매장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용미리에 3천5백평 규모의 산골 묘지인 추모의 숲을 마련하면서 수목장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추모의 숲 안에 30센티미터 깊이로 땅을 판 뒤 고인의 유골을 묻는 방식이다. 추모의 숲 중앙엔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분향대 등이 설치돼 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곳엔 10월 현재 1만명가량이 안장돼 있으며, 30만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외국영화를 보면 묘지라기 보다는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나무와 꽃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묘지를 보게된다. 영국의 마을 묘지에선 유골을 묻고 나서 그 자리에 장미를 심고, 가지에 작은 명패를 매어두면 그것이 곧 묘지역할을 하게 된다. 천황을 빼곤 모든 국민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화장이 확산된 일본에서도 몇 년 전부터 수목장이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일가족의 영생목이 모여서 아름다운 가족 정원이 꾸며진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묘지는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지는 것을 보고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은, 뇌리 속에 자연스럽게 자연과 하나되는 인간의 삶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생목에 꽃이 피고 잎이 무성해질 때, 또 낙엽이 질 때 아이들은 그 나무를 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느끼고 추억하게 될 것이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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