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과 조선족

[ 데스크창 ] 데스크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10월 21일(금) 00:00

자장면(炸醬麵)은 현재 40세 이상 세대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음식이다. 지금은 라면처럼 대중화됐지만 6, 70년대만 해도 자장면은 졸업식이나 입학식 등 특별한 날에 어쩌다 한번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 날이면 중국 음식집은 자장면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자장면은 중국 베이징과 톈진 지방에서 널리 만들어지는 요리라고 백과사전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식 중국요리인 것이 사실이다. 한국인이 해외여행할 때 여권보다 먼저 챙기는 고추장처럼, 1백년 전 이 땅에 들어 온 화교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게 바로 밀가루와 콩을 섞어 발효시킨 춘장이었다.

지난 7일 자장면 탄생 1백주년 축제를 연 인천시는 1905년 '공화춘'이라는 청요리집에서 '자장면'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 효시라고 밝히고 있다. 자장면은 특히 당시 인천항 부두 근로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점차 차이나타운 내 청요리집 사이에서 대중적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갔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1960년대 자장면 한 그릇은 15원. 화폐 가치가 다르겠지만 15원짜리 자장면이야말로 빈곤한 시대를 건너게 하는 힘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중국음식점에서 열에 아홉은 자장면을 주문했고,그 가운데 또 여덟은 "고기 많이 넣어서 곱빼기처럼 달라"고 주문했던 배 고픈 시절이었다. 청소년들에게 인기있는 가수 god가 그후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로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던 때는 오히려 모든 것이 풍요로워서 힘든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부르던 역설적 상징으로서의 자장면을 노래했던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해 존재를 잊고 살 정도로 익숙해진 자장면은 국내에 거주하는 조선족을 빼닮았다. 한 연변대 교수는 '자장면과 조선족'이란 기고문에서 "자장면은 한국에서는 중국요리로, 중국에서는 한국요리로 불리고 있다"며 "조선족은 자기의 귀속처를 잃어버린 자장면 신세"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원조가 중국이라는 이유로,중국은 이미 한국 맛으로 변형되었다는 이유로 자장면을 서로 자기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며 "조선족도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의식적인 교육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자장면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연합회관 15층 복도에서 재외동포법 시행령을 놓고 두 달 가까이 농성을 하고 있는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자장면만큼만이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받게 될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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