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치악산

[ 산방일기 ] 장돈식의 산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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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20일(화) 00:00
장돈식

날씨가 카랑하다. 산방 문을 나서서 고개를 드니 치악산 남대봉이다. 치악산 제2봉인 남대봉 정상에 걸쳐 쉬어가는 흰 구름, 햇빛을 반사하며 푸른 하늘에 획을 긋고 거기에 있다. "산과 강은 좋은 이웃"이라고 J.하버드는 어디엔가 썼다. 며칠째, 아내 이외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나 산이 있어 외롭지가 않다.

   
함허의 '함허화어록(含墟和語錄)'에 "산은 솟고 골은 깊어 오는 사람이 없네. 해가 맞도록 쓸쓸히 세상 인연 끊어졌네. 낮이면 한가히 산굴에서 나오는 구름을 보고, 밤이 오면 시름없이 하늘 복판의 달을 보네. 화로에는 차 다리는 연기가 향기로운데 누각 위에는 옥전의 연기가 부드럽구나. 인간 세상의 시끄러운 일은 꿈에도 꾸지 않고 다만 선열(禪悅)을 즐기며 앉아서 세월을 보내네"라고 쓴 글이 지금의 내 심경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한 여성을 사랑하듯 저 치악산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가끔 내 차는 세워 두고 5번 국도로 내려가 원주행 버스를 탄다. 몸소 운전을 하노라면 앞 길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산방에서 원주시내까지 20분 남짓한 거리를 오며가며 저 산을 바라본다. 버스의 내 자리는 언제나 내려 갈 적은 오른 편, 올라올 적은 왼 편이다.

자리가 없으면 선다. 반대편에 자리가 있어도 그리로는 가지 않는다. 산을 잘 볼 수 없으면 앉아도 마음이나 자리가 편치 않다. 닫은 차창에 김이 서려 산이 잘 보이지 않을 때면 손바닥으로 문질러 지운다. 몇 번이고 지운다.

시야에 산만 있으면 시끌한 촌부(村婦)들의 수다도 개의치 않는다.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백두산이나 설악산이 남성이라면, 영서(嶺西)의 땅을 뚫고 소사, 조손이 기품(氣品)있게 서 있는 저 치악산은 정다운 여성이라고 느껴진다. '원주'라는 지방도시는 치악산이 있어 축복받은 고장이다. 같은 강원도 땅이라도 강릉을 위시해서 동해를 끼고 있는 도시들과 거기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근년 들어서도 천재(天災)가 잦았다. '매미'니, '나비'니 하는 태풍에 연타를 맞고 인명과 재산에 손실이 많았다. 태풍도 비켜가고, 겨울의 폭설에도 원주는 우순풍조(雨順風調)해서 안온한 것은 치악산의 그늘이라서라고 생각한다.

산의 이름에서 좀 서운함과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묘향(妙香)하면 소프라노, 금강(金剛)은 알토, 한라는 남성의 저음(低音)을 연상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음감(音感)이 있다. 누가 붙인 이름인지,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됐는지는 모르나 "치악!"은 이 산의 정감 있는 용모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비음악적인 명칭이나 어찌하랴.

내가 이 산골에 칩거(蟄居)를 시작한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등산을 좋아해서 많은 산을 올랐으나 치악산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굽도리를 돌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하는 노랫말처럼 우러러 보는 것만도 족하다.
작 1천2백 미터의 높이를 못 오를 바는 아니다. 정상을 정복한다는 말이 싫다. 절절히 흠모하던 연인을 품에 안고 나면, 그 뒤로는 아끼고 사랑은 할지 몰라도 가슴 조이는 연모(戀慕)나 미감(美感)의 절정(絶頂)의 연장 같은 애틋한 그리움은 없어질 것이다.

젊어서는 바다에 한없이 탐닉(耽溺)했었다. 그러던 내가 그 분의 뜻이었던지 이 산에 들어왔고, 이제 나이 들면서 산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청산에 묻히는 것, 어쩌면 순리인지도 모른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차(茶)를 다리노라니, 백운을 걸친 치악산이 청순한 자태로 눈앞에 다가선다. 고산(孤山) 윤선도의 시 한 수를 떠올린다.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든 임이 온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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