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찾는 교육은 '이제 그만!'

[ 헬로티쳐 ] 장남기목사의 교육칼럼 '헬로 티쳐'(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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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24일(수) 00:00
기독교교육 수업 시간에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가져오라고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한동안 생각을 하다, 시중에서 파는 플레이도(밀가루로 만든 칼라 찰흙)를 가지고 갔다. 돌아가면서 왜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왔는지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때 나는 플레이도를 펴서 그 위에 내 주먹을 내려 눌러 주먹 모양이 새겨지도록 하였다. 그리곤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는 주먹(가르침)으로 플레이도(배움)를 눌러 주먹의 형태가 생기는 것과 같은 모양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나는 '정답'을 기대하면서 교수가 뭔가 대단한 말이나 학설을 말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교수는 모든 학생들이 설명을 너무나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모두의 대답이 정답이 된 셈이다.

행하는 교회교육만큼은 정답을 찾는 교육을 하지 말자.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너무나 연역법적으로 사고하고 공부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연역법이란 무엇인가? 이미 정립되어 있는 이론과 법칙을 각 방면에 적용해서 이해하는 방법이다. 학교교육이 바로 이렇다. 문제가 출제되면 미리 가르쳐준 해법을 적용해서 정답을 찾는다. 새로운 문제일지라도 미리 가르쳐준 해법을 적용해서 풀면 된다. 학교 시험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만 출제되기 때문이다. 결과에 도달하는 합리적인 순서와 이치를 학습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교회교육에서 이런 연역적 접근만을 사용한다면 신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하나님을 향한 순종보다는 신학에 사로잡히고 교리에만 순종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교육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즉, 이미 정해져 있는 정답만을 성경 속에서 찾도록 하는 신앙교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가오는 세대에 복음의 능력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정답 찾는 신앙교육에 길들여진 성도들을 양산해서는 안 된다.

방식을 살펴보자. "나를 따르라"고 주님은 제자를 부르셨다. 3년을 함께 있으며 가르침과 배움을 이끌어 가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라, 세상 속으로"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은 정답을 찾는 원리를 주신 적이 없다. 오히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만이 알 수 있는 신앙을 세우는 원자재만을 주셨다. 그리고는 모두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세상으로 제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교육(제자됨)을 끝내셨다. 이것을 두고 어윈 맥매너스는 "거칠고 근원적인 영성으로 살아가도록 재창조되었다"고 하였다. 제자들의 내면에 정답은 없지만 예수의 형상이 새겨진 예수꾼이 된 것이다. 정답만을 찾는 교육을 한다면 "가라, 세상 속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모토가 된다.
<美 찬양마을장로교회 담임 designtimesp=1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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