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힘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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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23일(화) 00:00
   
박지영/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ㆍ한시미션 간사
박지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ㆍ한시미션 간사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정명훈씨가 인터뷰 도중 "돈을 바라고 음악을 하면, 처음엔 음악이 잘 될지 모르지만,결국엔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돈은 떠나가고 안타깝게도 음악마저 떠나가게 되어 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음악을 하면서 돈을 추구할 때 돈이 떠나가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음악마저 떠나간다는 것은 무서운 말이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현재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 중 16퍼센트가 개종경험이 있는데,그들 중 과거 종교가 개신교였다고 하는 이들이 45퍼센트라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혹시 세상에서 기독교를 백안시(白眼視))하는 이유가 돈을 바라고 음악을 하는 어느 음악가에 대한 비난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의 지향점이 어떻게 잘못 되어 있기에 스스로에게는 해롭고 비 기독교인들에게는 덕이 안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일까. 그 답을 알려면 기독교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기독교가 본래 무엇으로부터 출발하여 무엇을 추구하고 있길래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면 될 것이다.

신학이나 교리에 대해 일천한 평신도인 필자로서는 기독교의 힘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라는 다른 어떤 이론과도 타협할 수 없는 진리를 출발점으로 하고, 그 구원의 기쁨 때문에 하나님의 기쁨과 이웃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지향점으로 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가 힘이 있는 것은 바로 이 출발점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지향하는 바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정향성 때문이다.

기독교가 대사회적 리더쉽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지향점에 대해서 흔들림이 있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이라는,유일하고 탁월한 진리에서 출발했다고 하면서도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과 동일한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 세상으로부터 비판받는 이유일 수 있다. 하나님의 기쁨과 이웃의 기쁨이라는 인류의 존재 목적을 이야기 하면서도 하나님의 기쁨과 이웃의 기쁨을 해석함에 있어,정치적 성향,진영(陣營)적 사고를 드러내는 모습이 저들의 말거리의 대상일 수 있다. 기독교 내에서도 그 정향성에 대한 정서적 일치를 보지 못하고 오해하고 갈등하니,상사 무서운 보초병이 보초는 안 서고 상사 눈치를 더 보는 격으로,기독교 내부 분열만 증폭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그 정향성에 대한 기본적 합의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 상호 신뢰하지 못하는 까닭에, 기독교 진리의 본질과 무관한 이슈들로 소모적인 논쟁을 하다가 정작 적기에 시대에 반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기독교는 비판받기 때문에 그 살아있음이 증명되는 종교이다. 얼마든지 비판을 듣고 이 시대 한가운데에 정확한 자리매김을 해 갈 수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기독교의 정향성 부재 내지는 상실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이라는 변개할 수 없는 진리이자 기독교의 출발점마저 당당히 세상을 향해 주장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음악가가 생각을 조금 삐딱하게 하여 돈을 좀 추구하다가 실패를 맛본다 하더라도,악기까지 빼앗기고 음악마저 못하게 되어서는 아니될 일이다. 우리의 유일한 구원인 예수 그리스도를 어찌 잘 변론해야 할지를 평생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기독인들이라면,기독교의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추구하는 바에 흔들림이 있을 때 초래되는 결과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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