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새 이야기

[ 산방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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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23일(화) 00:00
장돈식

때는 1990년대, 나의 산방의 둘레는 새의 천국이었다. 치악산을 우러르는 앞 뒷산은 우람하고,숲이 깊다보니 여기가 계절 따라 오고가는 새들의 집합장소였던 것 같다. 여름철새는 산 넘고 바다를 건너온 나래를 여기서 접었다. 그리고 무리를 헤쳐 저 갈 곳으로 갔다. 한 철을 한국에서 보내고 번식지로, 월동지로, 떠나야하는 겨울새들도 여기에서 모여 대오(隊伍)를 지었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저들의 지저귐은 서로 의사(意思)를 맞춰야 할 사연이 많았으리라. 오갈 일 없는 텃새들도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이맘 때는 미팅에 동참하였다.

   
텃새인 참새가 '짹! 짹!' 울기 시작하면 정확히 20분후에 해가 뜬다. 참새의 선창으로 새들이 일제히 지저대면 골 안은 소란해진다. 사람들은 저들이 즐거워서 읊는 노래로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 장도(長途)에 오르는 새들은 비장(悲壯)한 각오의 언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산 넘고 바다 건너 먼 길을 온 새들은 도중에 피로와 도중에 만났던 폭풍우와 포식자(捕食者)들에게 잃은 동료 생각에 우는 슬픔의 울음도 있을 수 있으리라. 이곳도 분별없는 남획과 서식(棲息)과 번식환경의 파괴로 개체수가 턱없이 줄었다.

이곳은 치악산 밑, 방그러니 계곡이다. 오래 전, 화전민이 비운 집에서 자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자정 무렵, 새소리인 것은 분명한데, 여름철, 공포영화의 효과음에서나 있음직한 으시시한 소리가 앞산에서 들려온다. 선반(旋盤)에서 쇠붙이를 깎는 것 같은 양 끝이 날카로운 금속성(金屬性)의 소리에다 해소병 환자의 숨넘어갈 듯한'-ㅋ' 소리가 섞인다. 아내는 공포에 떨고, 잠은 멀리 달아났었다. 그렇게 매일 밤, 자정때면 울기 시작하여 날이 밝으면 그친다. 예삿일이 아니어서 알아보니 그게 '호랑지빠귀'라는 올빼미 같이 생긴 딱새과의 철새임을 안 것은 오랜 뒤였다.

산방 둘레를 날며 밤낮으로 '호-호-호-호-' 휘파람 소리로 우는 새가 있다. "옳거니! 이게 말로 듣던 휘파람새로구나!" 지레짐작 했었다. 뒷날 새를 아는 분이 "저 새는 뻐꾸깃과에 딸린 '검은등뻐꾸기'이고, 휘파람새는 따로 있다고 한다. 그 후 근처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저게 그 휘파람새 소리요!”한다. 말로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종달새 크기인데 온 몸이 초록의 보호색이라 숲에 있으면 눈으로 찾아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언젠가 집 뒤 전깃줄에 앉아서 한 곡 울어주어서 몸통을 볼 수 있었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들은 사람들과 금새 친해진다. 약 15년 전, 산방 뒤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던 딱새가 있었다. 암컷이 새끼에게 먹일 애벌레를 물고 오다가 바지랑대 끝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새매가 달려들어 날개로 후려 쳐서 어미를 죽였다. 이어 수놈도 습격하려 하기에 나가 잽싸게 나서서 새매를 쫓아 수놈딱새를 구해줬다. 그 후 혼자서 새끼 다섯 마리를 기르는 수컷에게 먹이를 도와주며 돌봐줬다. 새끼를 다 기르고 나서는 사람을 의지 삼아 아예 둥지를 산방 처마 밑으로 옮겨 살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녀석은 정이 많아서인지 나의 아침 산책에 따라 나서곤했다. 다음 해 봄에는 다시 암컷을 맞아 번식하며 오늘에 이르도록 내 집을 떠난 일이 없다. 그러다가 지난 늦봄 나의 산방화재로 또 둥지와 마누라, 새끼를 잃고 또 홀아비신세가 되었다.

지난 봄 어느 날 저녁, 산방 위를 한 떼의 기러기가 날아갔다. 따뜻한 남한 땅에서 겨울을 나고 귀향하는 길이리라. 창공에 우람하게 솟은 치악산 정상(頂上))을 비켜서 산방 위를 난다. 치악산의 어께에 해당하는 여기가 저들이 태어난 고향, 시베리아의 광대한 습지(濕地)를 향해 가는 길목인가보다. 'ㅅ'자 대열의 맨 앞은 여기를 오간 경력이 많은 녀석일게다.

모두 긴 목을 뽑고 앞만 보고, 짧은 다리는 꽁지께로 바짝 붙였다. 몸통에 비해 좀 작은 날개이건만 열심히 공기를 가른다. 서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게 우리네 삶과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아득하도록 머나 먼 여정을 붉은 저녁 노을 속으로 사라져간다. 진한 어떤 감동이 가슴에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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