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넘어서

[ 음악에세이 ] 유혜자의 음악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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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8월 16일(화) 00:00
유혜자

강가에 서면 '세월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강물의 흐름이 보인다. 그런데 그 강물이 흘러 넓은 바다에 이르면 큰 물결로 넘실거릴 뿐 흐르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년시절에는 깊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닐 숨가쁜 심해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파도가 주는 잔잔한 기쁨과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하늘 끝닿은 곳에는 어떤 낭떠러지가 있어서 용궁이나 낙원이 펼쳐져 있을 것으로 상상 했었다.

멕시코 태생 로사스의 관현악 '파도를 넘어서'를 들으면 이런 상상이 들만큼 여유롭고 희망적이다. 흥겨운 바다의 춤이 연상되는 왈츠로, 서주는 좀 느린 기분이 드는 라르게트의 리듬으로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시작한다. 이 부분이 지나면 넓은 바다를 활짝 열어 젖히는 듯한 강렬한 짧은 연주가 나온다. 이어서 바닷물이 조용히 밀려가고 밀려오는 듯한 왈츠에 들어간다. 어쩌면 커다란 기선이 짙푸른 바다에 흰 파도를 일으키며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선율의 왈츠가 나타나, 이 두 왈츠의 선율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키면서 발전하고 화려하게 끝나는 음악이다. 6분도 안 되는 짧은 음악이기에 여름날 어느 곳에서나 경쾌한 벗이 될 수 있다.

로사스(Rosas 1868-1894)는 스물 여섯의 짧은 생애를 누린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로 이 곡은 23세에 썼다. 이 한 곡이 로사스의 이름을 불후의 것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자주 연주되고 사랑 받고 있다. 특히 영예로운 시상식장에서 많이 연주된다. 사회자가 이름을 부른 수상자들이 객석에서 무대로 가는 동안, 수상자와 관객이 기쁨을 함께 할 때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음악이 되었다. 나는 때때로 시상식장에서 울리는 이 음악에 취하여 수상자가 상을 받고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바다에서 끊임없이 일었다 부서지는 파도의 모습처럼 사람들은 다양하다. 바닷물은 한 빛깔이지만 깊이나 햇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혹은 파도의 크기와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사람들도 각자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회의 흐름에 따라 파도처럼 변하면서, 때로는 은은하고 때로는 맑고 파르스름한 신비를 잃지 않는 작은 파도처럼 존재한다. 그리고 바다의 큰 파도에 휩싸여서 흔적도 없어졌다가 다시 잔잔하게 일어서는 파도처럼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기도 하다.

바다는 자신의 깊이도 무게도 모른 채 큰 우리 안에 담겨서 넘실거리며 손상되지 않는 존재다. 작은 일과 큰 일에도 상처 입지 않고 건재하는 바다.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커다란 존재 안에서 사랑과 미움, 기쁨과 괴로움을 품어 안고 작은 파도로 쉼 없이 맑히며 수련하는 듯하다.

이 음악의 원제는 'over the waves'이다. over가 최근엔 정상이 아닌 부정적인데 많이 쓰인다. '~이상’ '과대', '극단' 등의 의미로 '오버'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over는 '~에서 떨어져서 위에', '~ 의 위를 넘어서 저쪽에' 등 다소 추상적인 의미의 뜻이 더 큰 단어이다. '~을 넘어서', '~에 더하여' 등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서 '고개 너머 마을, 강 건너 저편, 고비를 넘어서다, 위험을 넘어서다' 등 희망의 장소와 이상적인 곳으로 추측해도 좋으리라.

그래서 이 음악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파도를 넘어서, 어려움을 이겨낸 다음에 다가올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때로는 파도가 부르는 소리에 마음 설렌 적이 있을 것이다. 빛이 살아 움직이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바다, 그 넓은 바다의 어느 구비엔들 신선한 감동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파도처럼 부서져도 좋으니 자신을 마음껏 쏟아 내보라고 부추기는 듯한 젊은 날의 파도.

파도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 바람이듯 우리 꿈을 일으켜 세울 바람이 아쉬워진다. 바람이 파도를 일으킨다면 그 바람은 누가 일으키는가. 어릴 때 생각하던 파도 너머에 계신 분의 존재를 생각하며 '파도를 넘어서'를 듣노라면 다시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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