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신앙의 열정, 선교에 쏟는다

[ 우리교회 ] 서울동노회 산정현교회, 한 가정 해외 1개 교회 개척 매진

김성진 기자 ksj@kidokongbo.com
2005년 08월 10일(수) 00:00
   
주기철목사의 순교신앙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성장해 온 서울산정현교회 전경,
해방 60년. 일제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낸 선배들의 순교 신앙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교회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는 교회가 있다.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시무하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한 주기철목사의 순교신앙을 이어받아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교인들이 서울에 재건한 서울 산정현교회(송석산목사 시무). 한국전쟁 이후, 서울 회기동에 재건한 교회는 지금도 일제의 압박에서 지켜온 선배들의 순교 신앙이 곳곳에 살아 숨쉬고 있다.

1956년, 주기철목사의 뒤를 이어 평양 산정현교회를 시무하다 순교한 김철훈목사의 부인 여금봉전도사와 두 딸, 그리고 교인이던 유기천박사(서울대 총장을 지냄) 등이 교회 재건의 주축이 됐다. 초대 교역자는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이었다가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된 박봉옥목사였다.

해방 이후, 이들이 교회를 서울에 재건하게 된 배경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하루 속히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평양에 교회를 재건하겠다는 것. 교회 설립 당시, 교회 명칭을 동네 명칭으로 변경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도 뿌리치고 굳이 산정현교회라는 명칭을 끝까지 고집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재건 당시, 교인들은 이북에 재건할 교회 건축 헌금을 할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건축 헌금 액수만 2억7천여만 원에 이를 정도로 교회 재건에 대한 염원이 남달랐다.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이었던 한 장로는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북으로 달려가 교회를 재건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칠 정도였다.

주기철목사의 순교신앙을 간직한 산정현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애정은 남쪽으로 피난 온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지속적으로 만나 교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울 산정현교회는 다른 교회가 갖지 못한 뿌리 깊은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주기철목사의 순교 신앙이 흐르는 교회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신앙의 순수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오늘의 한국 교회에 일사각오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순교 신앙에 걸맞게 교회는 세계선교에 열정을 쏟고 있다. 담임 송석산목사는 "주기철목사님이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세계선교에 눈을 돌렸을 것"이라며 교회가 세계선교에 열정을 쏟고 있음을 강조했다.

오늘에 이르러 산정현교회는 순교 신앙의 열정을 세계선교에 쏟고 있다. 현재 교회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러시아와 동북아를 중심으로 활발한 세계선교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 일을 위해 교회는 3백 명의 기드온 용사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1천2백 명의 기드온 용사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한 가정이 해외에 한 교회를 세우는 선교사역을 전개해 그동안 수 십 개의 교회를 설립하는 성과를 거둬냈다.

특히 산정현교회의 선교는 자비량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목회자도 전액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걸음 나아가 교인들이 몽골의 울란바타르대학 학생 1명씩 4년간 장학금을 지원하는 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결국 교회로 하여금 선교사를 양성하는 결과를 얻고 있다.

   
담임 송석산목사.
선교에 대한 산정현교회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체 교인의 3분의 1이 청년들로 이뤄진 교회는 청년들이 선교의 비전을 통해 교회 성장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청년들이 매달 내는 선교비만 1백20만 원에 이른다. 이러한 선교비는 선교사 6명을 후원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선교에 대한 비전은 매년 실시하고 있는 단기선교도 자비량으로 이뤄진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많은 액수의 재정을 지원했지만 청년들이 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지면서 스스로 자비량으로 선교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교회는 10만 선교사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에 편승해 산정현교회는 1백분의 1인 1천2백 명의 선교사를 보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세계선교에 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청년들 중에 수십 명이 이러한 선교의 비전에 동참하고 있는 것. 청년들은 올해도 단기선교를 위해 1달 전부터 단기선교학교를 개설하고 선교단체인 인터콥을 통해 선교훈련을 받고 있다.

주기철목사의 일사각오 신앙을 지켜온 평양 산정현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서울 산정현교회는 오늘도 깨끗한 양심과 순순한 신앙을 이어가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순교 신앙을 이어받은 서울산정현교회는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해 세계선교로 확산시켜 가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평양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피난을 내려와 교회를 재건해 세운 산정현교회가 세 곳이 있다. 본교단 소속의 서울 산정현교회를 비롯한 후암동에 자리하고 있는 산정현교회(독립교회)와 이 교회에서 분립해 서초동에 세워진 합동측 산정현교회 등 세 곳이다. 그리고 부산에도 산정현교회가 있다.

초기에는 서울의 3개 교회와 부산의 1개 교회가 해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예배를 드렸으나 지금은 서울에 있는 3개 교회만 돌아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처럼 서울에 재건한 3개 산정현교회 간의 유대는 교파를 초월해 남다르다. 합동측 교회에서는 타교단 목사를 강단에 세우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오고 있지만 산정현교회 만큼은 통합측 교회 목사를 강단에 세울 정도다.

이처럼 3개 교회들이 연합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순교자 주기철목사를 기념하기 위해 조직한 주기철기념사업회가 있다. 기념사업회는 해마다 주기철목사기념강좌를 비롯해 3개 교회를 순회하며 순교기념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주기철목사의 설교집과 그에 관한 연구집도 발간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기념사업회가 거둔 성과 가운데 하나는 바로 주기철목사의 복권이다. 1931년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목사직에서 제명된 주기철목사의 복권을 추진해 온 주기철기념사업회는 66년만인 1997년 목사직 복권을 이뤄낸 것이다. 그리고 기념사업회의 활동은 주기철목사의 학적 복권도 이뤄냈다. 평양신학교 졸업 명부에 주기철목사의 이름이 삭제돼 있었는데 장신대 퇴수회에서 학적부에 이름을 등재키로 한 것. 그리고 주기철목사 복권 선포식을 갖기도 했다. 당시, 복권 선포식에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총장이었던 한철하박사와 할렐루야 김상복목사 등이 참석했는데 이들은 모두 평양 산정현교회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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