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돌이네 가족사

[ 산방일기 ] 산방일기

이경남 기자 knlee@kidokongbo.com
2005년 08월 09일(화) 00:00
장돈식

   
담돌이는 다람쥐 이름이다. 오래 전 이 백운산 중턱, 우리 내외가 화전민이 살던 빈 집으로 찾아들 무렵에는 다람쥐가 추정으로 2백마리는 있었다. 이 녀석들은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아, 약간 거리를 둔 채, 신참(新參)인 나를 따라다닐 정도로 호기심이 있었다. 이 터에는 30년도 더 된 대추나무, 밤나무가 수 십 그루가 있었고, 나는 처음부터 그 열매는 여기 터주 대감들인 다람쥐의 몫이요, 양식이라고 생각하여 밤이나 대추를 거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들 이웃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랬건만, 십 여 년쯤 전에 사건이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낯선 사람이 있다. 내 집터의 돌담 앞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 앞을 스쳐 흐르는 개울도 있는데 돌무더기 앞에서 낚시라니, 해괴해서 "거기서 뭘 하는 거요" 물으니 방금 다람쥐 한 마리가 요기 구멍으로 들어갔다"고한다. 호기심 많은 이놈들은 낯선 사람을 보고 제 굴로 도망은 간다. 그리고서도 호기심에 금방 돌아서서 밖을 보다가 낚시 바늘이 얼씬 거리면 문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이어졌다. 자기는 도청(道廳)에서 다람쥐 잡는 허가를 받았고, 잡은 것은 외국으로 수출을 한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외화(外貨)가 귀했던 시절이다. 그의 등에 지고 있는 가방에는 퍽 여러 마리의 다람쥐가 들어있었다. 여기서도 몇 마리 낚았다고 한다. 우리 터에서 잡은 것은 놔주고, 여기서 당장 나가라고 하니, 매우 못마땅한 표정이다. 멱살을 잡지는 않았지만 격렬한 말싸움 끝에 그 사람은 물러갔다.

그날 저녁이었다. 엄지 손가락만한 어린 다람쥐가 사람을 보고는 냉큼 그 구멍으로 사라진다. 잡혀간 녀석들은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젖이나 떨어졌을까, 아직 어리니 먹이를 스스로 찾기는 어려운 나이다. 녀석들의 세계에는 정글의 법칙만 있을 뿐, 고아원 같은 게 있을 턱이 없다. 다람쥐 어버이 노릇은 난감했다. 우선 병아리 먹이를 접시에 담아 구멍 앞에 놓아 주었다. 처음에는 먹이를 외면하더니, 사람 없는 틈에만 먹은 흔적을 남기더니, 차츰 인기척을 피하지 않는 기색이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체구는 작지만 한 마리의 다람쥐로 자랐고, 짝도 생겼나보다. 옥수수 따위를 흘려 서재 앞으로 유도하였더니 녀석은 아예 내 서재 밑 돌담 속으로 둥지를 옮겼다. 한 지붕 밑에 사는 이웃이 되었으니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다. 담 밑에 사는 똘똘이니 '담돌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언제부터인가 자고나서 방을 치우다보면 발치 출입문 곁에 까만 보리알갱이 같은 게 소복이 싸인다. 얼마 후에야 그게 '담돌이'의 배설물인 줄 알았다. 밤이면 서재의 엉성한 문틈으로 들어와 신발방석 위에서 자는 것이다.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다람쥐의 수명을 잘 모른다. 그저 수 3년일 것으로 생각한다. 천적(天敵)이 많아 제 수명을 다 살기도 어려울 것이니 지금 나와 동거하는 녀석들은 몇 대째의 '담돌이'인지는 모른다. 개울 건너 앞산에는 황금색 들 고양이 한마리가 출몰한다. 처음에는 파리하더니 점점 체구가 커지고 살이 쪄서 윤택해졌다.

저 고양이가 살이 찌는데 비례해서 산 새소리가 줄어들고, 다람쥐 개체수가 적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정자 앞에는 단풍나무가 한 그루 있고, 건너에는 도토리나무 숲이 있다. 그리고 냇물을 넘어 얽힌 다래넝쿨이 있어 '담돌이'가 계곡을 건너가 도토리를 물어오는 통행로 구실을 한다. 지난해 가을 일이다. 도토리를 물어갔던 '담돌이'가 들고양이에게 봉변당할 뻔 한 일도 있다.

도로공사가 고속도로를 낼 때, 내 서재는 헐렸고, 계곡 상류로 활(弓)한 바탕거리에 서재를 옮기니 '담돌이'네 가족도 나를 따라서 이사를 왔다. 해묵은 대추나무, 밤나무 숲이 없어지니 다람쥐들도 그 수가 줄어 지금은 수 십 마리가 있을 뿐이다. 나는 저들에게 식량을 대주기를 초대(初代) '담돌이' 이후 10여 년간 끊은 적이 없건만. 집에서 기르는 개들을 무서워하기에 2층 베란다에다 주었고, 이들은 어렵지 않게 벽을 타고 올라와 나와 눈 맞춤하며 먹고는 새끼들을 위하고, 겨울 준비를 하느라 먹이를 양쪽 볼 주머니에 가득이 가져간다. 일가(一家)의 가장 구실을 하는 것이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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