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적인 신앙, 열정적인 사랑

[ 믿음으로떠나는여행 ] 믿음으로 떠나는 여행(20)-목포 공생원의 발자취를 따라서②

이수진 기자 sjlee@kidokongbo.com
2005년 07월 26일(화) 00:00
   
젊은 시절의 윤치호
공생원은 1928년 7명의 고아들과 함께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5천 명이 넘는 아이들을 사회로 배출했다고 한다. 실로 대단한 사역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복지재단으로 목포의 대표적인 아동복지시설이지만, 그 출발은 목포의 한 다리 밑에서 배고픔에 쓰러진 아이들을 품에 안은 19살 청년 윤치호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함평에 살던 윤치호가 목포로 나온 것은 당시 목포의 상황과 무관치 않다. 당시 목포는 부산, 인천과 더불어 조선의 3대 항구로 중국의 대련, 상해, 일본을 연결하는 항로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한창 발전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목포를 확장하기 위해 여러가지 행정개편을 하였고, 이런 목포는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도시였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굨 화려한 꿈의 도시 이면에는 심한 빈부의 차로 거리로 내몰린 걸인들과 고아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청년 윤치호가 목포에 온 것이다. 그는 호남동 18번지에 '나사렛 목공소'를 차리고 목공일을 하기 시작했다. 목공일에 재능이 있어서 그는 언제나 일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목포를 가로지르며 노방전도를 하는 전도인이기도 했다.

그의 신앙에 대한 열정은 굉장했다고 한다. 한번은 출동하는 소방차를 세워 목포 시내가 발각 뒤집히는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공생원에서 발간된 책 '아름다운 유산'은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어느 날 오후 퇴근 무렵 남교동 시장 쪽으로 출동하던 소방차를 웬 청년이 뛰어들어 두 손으로 정지시켰다. 놀란 소방관들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야! 미친 놈아! 자살을 하고 싶으면 죽을 곳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길 한가운데서 이 야단이야?" "여러분! 나를 미친놈이라고 해도 좋소. 그러나 불을 끄러가는 것도 급하지만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지옥의 불을 끄는 것이 더 급한 일이오. 오늘 내가 불자동차를 멈추게 한 것은 여러분들을 먼저 지옥의 불에서 구하기 위한 것이었소. 여러분! 지옥의 불을 꺼야합니다. 그러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한 분뿐인 하나님께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실 분은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무모해보이기도 한 그의 열정적인 신앙이 있었기에 당시 누구도 엄두를 못내는 공생원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공생원 마당에서 보면 전방에는 공생원 교회가 보이고, 왼쪽에는 아이들의 숙소, 오른 쪽에는 사무실과 자원봉사실, 교회 너머로 도서관이 보인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건물마다 운치가 있다.

교회로 들어서면, 입구에 윤학자관이 있다. 이곳은 윤치호, 윤학자의 평생의 사역을 사진으로 전시해놓은 곳이다. 사진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이들의 놀라운 사랑의 사역을 만나볼 수 있다. 둘러보다 보니 윤치호 전도사의 사진이 눈에 띈다. 작고 마른 체형의 사람. 어떻게 저런 작은 체구에서 커다란 힘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삶은 열정 그 자체였다.

공생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7명의 첫 식구를 만난 불정대 다리는 당시에 고아들의 거처가 되는 곳이었다. 10월쯤이었다고 하니 가을날의 쌀쌀함이 사뭇 몸을 움츠려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윤치호의 눈에는 몸을 떨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품은 젊은 청년에게 이들은 차마 뿌리치지 못할 어린 영혼들이었다.

"따뜻하게 재워줄테니 따라오라" 이렇게 해서 시작된 공생원은 입소문이 퍼지면서 고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윤치호는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폐품 수집이나 잔반 수거를 했는데, 이때부터 그에게는 '거지대장'이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위해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 폐품을 가져올 뿐 아니라, 복음전도에도 게으르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미래를 위해 피어선 성경학교에까지 유학했다고 하니 그의 열정은 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박귀용 목사/ 누가성지교육원 ㆍ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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