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계절을 기다리며

[ 논설위원 칼럼 ] 논설위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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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9일(화) 00:00
   
이승하/해방교회 목사
이승하
해방교회 목사

한국교회는 성령의 계절을 기다리는 역사적 시점에 와 있다. 1907년 성령운동은 회개운동이었다. 첫 해 3만 7천명이,1911년 14만 명으로,1919년에는 20만 명이 되었다. 국민의 1퍼센트였다.

회개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술과 도박,게으름을 몰아내고,상투를 자르고 열심히 일을 했었다. 그리고 미신에서 해방되었다. 설교 시간에 그들은 두려워 떨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했고,설교자의 외침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예배에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났다.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도왔으며 사회적 협동정신을 발휘하여 무엇이나 함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라를 잃은 민족으로서,이 힘은 자연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므로 3.1운동에서 기독교인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회개운동의 결과였다. 인재가 양성되었다. 민족교육이 강조되었고,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 금주금연운동,여성의 신장운동으로 이어졌다.

1975년 성령운동은 부흥운동이요,성장위주였다. 수적인 성장을 보였으며,자연히 경제적으로 부요해졌다. 목회자들의 관심은 수적인 데 있었지 성도들이 회개하고 변화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설교도 즐거운 내용을 좋아했다. 설교자들은 재미있는 예화를 찾았고,축복 위주의 설교가 되었다. 전도는 수적 증가에 있었지 회개하고 참 교인이 되었느냐 하는 것은 별로 점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부흥했다. 1970년 대 초 2백만 명이 1985년에 1천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상 획기적인 부흥이었다. 그러나 그 후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회 분쟁이 계속되어 교파가 1백개를 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 지도자가 배출되지 못하고 신문지상에는 기독교인이 사회적 비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 비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기독교인 중에 진정 본 받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1907년 성령운동은 회개운동이었고,1975년 성령운동은 부흥운동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한국교회가 어떤 성령운동을 기다릴 것인가? 이제는 각성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누가 먼저 각성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단연코 목회자들이다. 먼저 회개하고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각성은 회개 뿐이다. 그래야 교회가 바로 성장될 것이다. 목회자들이 복음적 신앙 위에 서야 한다. 신학이 교회를 좌우한다. 그 시대의 신학은 목회자들을 움직인다. 복음적 선교사들이 성령운동이 성공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터 위에 서서 각성해야 한다. 교회의 성령운동에는 목회자가 그 주역이다. 성령운동은 행사나 이벤트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복음적 감동의 설교가 선포되어야 한다. 예배는 설교 중심이다. 은혜로운 설교는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감동의 설교는 사람을 거듭나게 한다.

1969년 노벨 문학상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받았다. 그 내용은 방랑객들이 새로운 가치체계,즉 새로운 신인 '고도'를 기다리며,대화를 계속하다가 결국은 '고도'를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방랑객들은 끝까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단 한 가지 할 수 있는 말을 지껄이며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그들의 죽음이 오기까지, 그들에게 허용된 유예기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베케트가 보는 현재의 인간상이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제 그들과는 달리 각성하고 열심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계절을 맞아야 할 것이다. 그 때 한국교회에 맡겨진 세계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그 때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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