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폭력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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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2일(화) 00:00
박상은
샘안양병원 원장ㆍ기독교생명윤리위원

   
박상은/샘안양병원 원장ㆍ기독교생명윤리위원
21세기는 분명 폭력의 시대이다. 아프간의 총성이 채 멎기도 전에 9.11 테러가 자행되었고 이어 이라크는 폭탄으로 뒤덮이어 지금까지도 그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새삼 깨닫게 되는 사실은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폭력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적으로 자행되는 전쟁의 폭력,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무고한 희생을 불러오는 테러의 폭력,마약 산업과 유흥주점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조직적 폭력,납치와 유괴, 강도 등의 사회적 폭력,강간과 성추행등의 성폭력,채권과 채무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경제적 폭력,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언어폭력 등 어쩌면 우리의 삶이 폭력의 숲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눈에 보이는 폭력 외에 최근 과학의 발달로 야기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없는 폭력이 많이 발생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현미경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생명공학의 발전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수많은 인간생명을 파헤치며 처참히 살해하는 시술들이 난무하고 있다. 많은 태아들이 침묵의 절규를 외치며 죽어가고 있으며 셀 수 없는 인간 배아들이 실험에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 해에 낙태로 사망하는 태아가 5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이는 일전의 미국 테러 참사같은 재앙이 한 해에 만 번 정도 일어나는 수치와 맞먹는 셈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현미경적 폭력은 곧 이어 보이는 폭력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각종 테러와 전쟁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리 놀라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인간 생명에 가해지는 무수한 첨단의 폭력이 바깥으로 표출된 것에 불과한 것일 수 있으며, 어쩌면 우리 마음에는 이보다 더 무서운 죄악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배아줄기세포를 확보하기 위해 파헤쳐지는 어린 인간배아들의 생명에 대해 우리는 볼 수 없고 인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깊은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자기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을 누가 지켜줄 것인가?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가장 연약한 인간배아의 모습으로 마리아 태중에 성육신하시지 않았는가? 오늘날 생명공학과 휴머니즘의 이름으로 묵과되는 배아실험,유전자조작,낙태,안락사 등의 폭력에 대해 이제 교회가 분명한 선지자적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서의 가르침대로 생명과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 풍성히 누리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님처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우리의 삶을 드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웃사랑은 예수님 말씀처럼 가장 작은 자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늘날 누가 가장 연약한 자인가?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 낼 수 없는 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 폭력 앞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자가 바로 연약한 자가 아닐까?

우리 곁에 와 도움을 요청하는 중증애인,정신지체아,치매노인,영아,태아,인간 배아들의 애절한 절규를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어떤 종류의 폭력도 생명의 존엄함을 침해하지 않도록 우리는 깨어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로 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평화의 사도로서 생명지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생명과 평화,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미션이며,우리 성도가 다 함께 힘을 모아 이룩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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