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 빛으로 생명으로 ] 빛으로생명으로(100)-이정우 목사의 십자가정병키우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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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2일(화) 00:00
   
군선교에 파송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필자에게 있어 잊지못할 기억 가운데 한 가지는 성전봉헌이다. 지금까지 성전 봉헌을 아홉 번 했다. 묘하게도 부임하는 곳마다 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되었고 감사한 것은 그때마다 돕는 천사들을 붙여주셔서 주님께 봉헌 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지워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 하나가 있다. 서부전선 모 부대에서 열심히 교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육군본부에서 인사명령이 났다. 임지는 강원도 모 부대였다. 교회를 다 건축하고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육군본부에 사정 사정하여 한달간 지연 명령을 허락받았다. 서둘러 교회를 짓고 봉헌 바로 전날 권사님 한 분이 기증한 피아노까지 들여놓고 은혜스럽게 봉헌예배를 마쳤다.

그 날 밤은 토요일이었는데 생면부지 가보지도 못한 그 부대를 지도를 보고 물어물어 당도했다. 갈 곳은 두 곳 중 하나였다. 한 곳은 교회도 아름답고 컸을 뿐 아니라 지휘관도 군에서 소문난 믿음의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신자들이 제법 모이는 그야말로 군 목회하기에 여건이 좋은 곳이었고, 다른 한 곳은 60년대 미군들이 막사로 사용했던 건물을 개조하여 지은 가건물로 여건이 열악하기로 소문난 교회였다. 군종병이 2년전 교회에서 연탄 가스로 순직한 곳이라서 그 여파가 계속되고 있었다. 지휘관들이 교회 보내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인간인지라 기왕 간다면 여건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내심 '하나님께서 교회 짓느라 고생한 나를 어여삐 봐주시겠지…'하며 그 곳에 가서 어떻게 목회할까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사단 목사는 "이목사가 교회를 지어 본 경험이 있으니 그 오지 교회로 가라"는 것이다.

교회 건물이 을씨년스러웠다. 교회가 아니라 쓰러져 가는 막사였다. 지붕은 비닐을 몇 겹으로 쌓아 비가 안새도록 돌을 묶어 달아놨고 강대상을 보니 빗물 샌 자욱으로 얼룩지다 못해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공동 묘지 한 가운데 위치하다 보니 낮에도 혼자 있기가 오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을 개발한다고 묘지 이관을 한참 하고 있어 묘지를 파낸 자리가 수북했다. 새벽예배 때엔 혼자서 교회를 찾아야 할 때가 많았다. 교회 건축은 고사하고 이곳에서 영적 싸움을 버텨낼 수 있을까? 교회를 부흥시키고 과연 부대에 큰 영향력을 발하는 교회를 일굴 수 있을까? 모든 것이 험난하기만 했고 영적 부담이 육중한 무게로 짓눌러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노신사 한분이 교회에 오셨다. 지나가다 들르셨다면서 교회를 짓고 싶은데 기도원에 지을까 아니면 군에 지을까 기도 중에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보내신 영적 까마귀이셨다. 그때 필자가 체험한 것은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다. 교회 상황을 말씀드렸고 그 분은 부대에 교회를 지어 봉헌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은 금호중앙교회 김몽송 장로님이셨다.

김 장로님은 이북에서 피난오시면서 자수성가 하신 분인데 피난 당시 부모님께서 돈이 없어 헌금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아파하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싶으셨지만 마음껏 하시지 못했던 부모님을 추모하며 교회를 봉헌하신 것이다.

교회는 기도로 은혜로 순조롭게 지어지기 시작했다. 지휘관이 불자였지만 교회 건축에 적극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교회가 건축되는 과정을 꼼꼼히 챙기셨다. 그리고 그 분 후임으로 교회를 지어 본 경험이 있는 믿음의 지휘관을 보내주셔서 교회는 완벽히 봉헌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교회 봉헌의 모든 과정은 교회 부흥의 촉발점이 되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 가족 2명, 병사 40여 명이 드리던 예배가 가족 60여 명, 병사 4백여 명 이상 예배드리는 놀라운 기적의 교회를 이룰 수 있었다. 연대급 교회가 그 사단에서 최고로 크고 왕성하게 선교를 하는 경이적인 축복으로 함께 하신 것이다.

그곳에서 필자의 마지막 설교 제목은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감사해요'였다. 그 부대 부임 첫 설교 시간도 그랬고, 마지막 설교 시간도 목이 메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부임 첫 설교때 흘린 눈물이 육중한 영적 무게와 부담감,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의 눈물이었다면, 마지막 설교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가장 위대한 작품을 만드신 하나님께 드리는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었다. <연무대교회 담임 designtimesp=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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