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면회

[ 연재 ] 데스크 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06월 28일(화) 00:00
최전방 GP 총기 난사사건으로 우리의 소중한 아들 8명이 목숨을 잃었다. TV를 시청하면서 아들을 군대에 보낸 모든 부모들이 동병상련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지난 6월 25일,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아들이 있는 전방부대로 달렸다. 12시가 다 돼서야 다다른 부대 앞 위병소. 평소 주말 같았으면 사병의 친구나 애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 한 두 명이 서성거리던 위병소는 총기사건 이후 전국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가족 단위 면회객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만난 한 면회객은 "TV에서 목숨을 잃은 장병들 사진 앞에서 오열하며 실신하는 유가족들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아들 걱정에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며 아들이 걸어 들어 올 위병소 주위를 초조하게 서성였다.

마침내 건강한 모습의 병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자 가족들은 누구라할 것 없이 달려가 온 몸으로 얼싸안았다. 할머니 한 분은 오랜만에 보는 손주의 볼을 연신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가족들은 준비해간 음식을 한쪽에 펼쳐놓고 주위의 상병,일병 뿐 아니라 가족 면회가 없는 선임병들을 불러 함께 먹도록 했다. 이들은 선임병들에게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서툴더라도 동생처럼 생각하고 챙겨달라"며 거듭 어깨를 다독였다. 부대원들은 이들 부모를 안심시키려는 듯 신세대 병사답게 한덩어리가 돼 사진 촬영에 응하기도 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돌아서는 부모들은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오랫동안 아들이 걸어들어간 부대안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나 부대 정문을 통과할 때부터 잔뜩 굳어 있던 부모들의 얼굴은 건강한 아들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대부분 긴장을 풀고 웃음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잠시 이들과 섞여 아들을 면회하며 남들처럼 유별난 포옹은 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잘 지냈느냐,아픈덴 없냐는 말을 건내며 멋쩍게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런 애비에게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서려는데 아들이 집에 가서 보라며 편지 봉투를 쥐어줬다.

"머리를 빡빡 밀고 논산훈련소에 입소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9개월이 지났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집에서 떨어져 지내며 독립심을 배우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헌병 근무를 서느라 주일예배에 자주 나가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날마다 체험하며 감사드리고,모두 엄마 아빠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집니다..." 운전하는 동안 아내가 대신 읽어준 아들의 편지에 몇번이나 차창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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