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그 수치스런 범죄

[ 연재 ] 데스크창

김훈 기자 hkim@kidokongbo.com
2005년 06월 21일(화) 00:00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자살의 방법은 83가지, 자살의 동기는 무려 9백89가지나 된다고 한다. 전 세계 단 1년간의 자살자 수가 베트남전쟁 7년동안에 전사한 미군 병사 수의 10배가 넘는 비극은 인류가 자초하고 있는 또다른 정신적 질병이며 재앙이다.

유복하고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회지도층 저명인사들의 잇따른 자살과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를 보면서 왜 갑자기 우리 사회에 자살이 작은 화두로 떠오르게 됐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자살률이 1위가 될만큼 살기 힘든 나라여서'라기엔 경제지표와 삶의 인프라가 아직은 그렇게 막되고 험한 처지도 아니다. 그런데도 한강대교에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기름칠을 하고 철조망을 겹겹이 두르는 예방 조치를 해도 열성적인 투신자들을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다.

자살의 동기가 단순히 사는 형편이 어려워서 인 것 같지도 않다. 영국의 템즈강이나 투신자살자 세계 최다라는 오명이 따라다니는 샌프란시스코의 골든 게이트 다리에도 자살자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템즈강 자살자들에 대해 동정 대신 비웃듯이 이렇게 비판한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강에 투신하는 사람들'. 영국인들은 템즈강이 소수 자살자의 현실 도피처로 이용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 역시 수심 1백미터의 거센 해류와 싸우며 불굴의 투지와 희생으로 건설한 세계 최고의 다리가 세계 최고의 자살다리로 이름 나는 것을 싫어한다. 자살행위를 다리 건설에 담겨있는 불굴의 투지와 희생, 인내의 인간정신을 모독하는 수치스런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살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되며,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55년 전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던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에 나간 젊은이 25만명은 끝끝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6.25 당시 전체 참전국의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2백만명에 달한다. 나라를 위해 초연히 쓰러져 간 순국선열의 희생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의 자살률 1위 기록은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생명은 하나님이 거두어 갈 때까지는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 그것은 9백89가지 이유 중 그 어떤 것이든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런 범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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