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목사의 십자가정병 키우기6

[ 빛으로 생명으로 ] 빛으로생명으로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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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14일(화) 00:00
필자가 후방 부대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부대 근방 마을에서 민간인 할머니 한 분이 교회에 출석하셨다. 그 분 집안은 안타깝게 풍랑이 잠잠하지 못한 가정이었다.

   
할머니는 새벽예배에 나오시면 눈물이 기도셨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가끔씩 필자를 붙들고 하소연 하셨다. 보통 두 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6시부터 말씀을 시작해 10시가 넘게까지 하고 가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서른에 보내고 홀로 3남매 자녀들만 보면서 모진 풍상의 세월을 견뎌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할머니에게 손주 욕심이 얼마나 크셨겠는가? 그런데 할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손주들이 중학을 중퇴하고 셋 모두가 못된 길에 빠져있었다.

폭력집단에 가입하여 속썩이는 손주가 있는가 하면, 물건 훔치다 소년원에 들어가 있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이다. 이러한 아픔 때문에 며느리는 마음을 달랜다고 한 잔 두 잔 마시던 술이 중독이 되어 있었다. 술만 들어가면 인사불성이다. 아무 집 헛간에서 술 주정하다 쓰러져 자고 오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이 할머니의 새벽기도가 눈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새벽예배를 드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여느 때와는 뭔가 달리 초조함이 가득해 보였다. 집에 방문하여 기도해달라고 심방 부탁을 했다. 그 날 따라 필자는 해안 소초에 병사들 교육이 잡혀 있었다. 해안 부대는 사단급에 군목이 혼자밖에 없다. 목회일 뿐만 아니라, 신병 교육대 세례도 준비하고 베풀어야지, 병사들 상담도 해야지 해안에 방문하여 교육도 해야하는 등 참 바삐 보낼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부지런히 교육을 마치고 서둘러 부대에 도착하니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저녁 식사 때도 되었고 해서 아주 간단하게 찬송가 한 장과 성경 말씀을 서둘러 읽고 나왔다. 예배드리는 할머니 모습이 예전갖지 않아 농담삼아 "할머니, 오늘은 성경을 오래 찾으시네요?"하니 "글쎄요. 다른 때 갖지 않네요. 잘 안찾아져요"라고 하셨다.

그 후 3일이 지났을까?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는데 벨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의 전화였다. "목사님, 어... 어떡해유. 며느리가 농약 마시고 죽었슈.” 청천벽력같은 전화였다. 제초제라서 손을 쓸 수 없이 세상을 떴다는 것이었다.

자살한 집안에 딱히 어찌 예배를 드려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교인들과 유가족 위로를 위해 찾아갔다. 위로 예배를 드리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통곡을 하셨다. 그 다음 비수같은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우리 며느리는 목사님이 죽였슈. 목사님, 살려내요. 심방할 때 찬송도 많이 안불러 주시고 성경말씀도 오래 안해 주셨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 순간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 없었다. 함께 같이 간 교우들도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배는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다드렸지만 그 할머니의 말씀은 필자에게 대못 같은 상처였다. 심히 괴로워 하는 어느 날 기도 중에 이런 음성이 들려왔다. "정우야, 그 할머니 말은 내가 너에게 주는 음성이다. 내 음성이다!" 이 음성이 나의 가슴에 계속 메아리쳤다. 제단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무엇이 본질인가? 생명이 본질이었다. 그런데 나의 바쁜 일이 핑계가 되어 죽어가는 가정과 생명에 대해 더 진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그 할머니의 말씀을 기억해 내고 있다. 뼈가 아픈 말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목회하는 필자에게 본질인지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그리고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이 사건을 잊지 않으려고 교회를 옮길 때마다 표어를 붙이며 사역하고 있다. '주님 사랑 생명 사랑!' 주님을 사랑하고 그 뒤를 따르기 위해 나섰다면 생명이 우선이다. 그리고 말씀을 떠 올린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왔다."(요10:10)
<연무대교회 담임 designtimesp=1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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