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거울

[ 논설위원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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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17일(화) 00:00
한 나라의 이미지는 그 나라 국력의 신장과 비례한다고 말한다. 군사력이 되었든, 경제력이 되었든, 외교력이 되었든 결코 그 나라 국력의 외형적 크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해마다 열리는 선진 7개국 정상회담이라든가, 세계 권역별 다국가 공동체 모두가 나라마다 힘겨루기와 경제진출을 위한 세계화 전략의 소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상품으로 각광받는 한국산 휴대폰이라든가 TV 등 가전제품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중국 등 동남아 일대를 뜨겁게 달군 한류열풍도 우리나라의 경제력 신장과 세계화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요 몇년새 국내서 정치판 싸움질 하는 동안 기업과 국민들은 바깥 세계로 눈을 돌렸다. 요즘 세계유수 언론에 오르내리는 한국 경제의 실상을 보노라면 어느새 우리가 이처럼 성장했는가 놀라울 뿐이다.

포스코가 이제 세계 제4위의 제철공장으로 발돋음했고 이윤을 많이 내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는 제철소가 됐다.

그 힘을 입어 세계 최강의 조선왕국이 되어 세계 1위의 현대중공업을 비롯하여 2, 3, 5위의 대단위 조선소가 모두 동해와 남해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칩 하나로 삼성전자는 연간 1백1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SK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 규모의 정유공장을 가졌는가 하면 대한항공은 화물운송분야에서 세계 제2위를 자랑한다. 상품별로도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모자 등 중소기업 제품들이 수두룩하다.

무역자유화는 상대방 국가의 정책에 상관없이 그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한 아담 스미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글로벌화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추세다. 거래 및 통신비용의 격감으로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무역상품화하고 글로벌 통신체계역시 국경을 넘어 생산과 부품 및 금융조달을 효율적 협력체제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아예 정보자체가 중요한 교역대상이 되어버렸다.

기술과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안주는 곧 죽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기업마다 현상유지에 도전, 이를 깨뜨리고 부단히 경쟁우위를 창출해 가는 것만 살아남는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경쟁은 기업의 능력과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몇가지 중요한 경제적 결정에서 영향력을 견지할 뿐이다. 대신 자본을 끌어들이고 근로자의 교육수준을 높여주며, 재정안정과 물리적 인프라와 문화적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공평과 페어플레이를 정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정치가 경제를 마구 흔들어대고 교육 문화 언론위에도 가위 무소불위로 군림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이후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활발한 것도 모두가 공존공영을 꾀하자는 뜻이고 특히 대한민국의 번영은 세계의 경제석학들이 입을 모아 싱가포르와 대만과 함께 '예외'로 여길 만큼 모범적 경제국가로 대접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작년 2월 이란의 수도 테헤란서 충격을 받았다. 폐쇄적인 회교사회주의국가임에도 테헤란 거리엔 기아의 프라이드 승용차가 홍수를 이루고 상점은 몇 집 건너 삼성 아니면 LG의 휴대폰 대리점 간판들이 즐비했다.

금년 4월 이집트 카이로 시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고, 지난 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 들러선 정말 깜짝 놀랐다. 서울의 시내버스는 물론 학원 봉고차 중고 승용차가 차체에 쓰인 노선표지나 상호 그대로 둔 채 울란바토르 거리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이었다. 반가움과 함께 우리나라의 국력을 새삼 실감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윤순재 선교사가 총장을 맡고있는 울란바토르대학교나 강지헌 선교사의 에바다치과병원, 몽골연합신학교 그리고 18명의 선교사들이 힘써 사역하고 있는 교회와 선교사역 현장 모두가 어떻게 그다지도 성령 충만한지, 수련회차 찾아간 방문자들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자기 민족 구원을 위해 눈물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그들에게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았다. 말끝마다 세계 제2위의 선교국임을 자랑하는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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