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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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10일(화) 00:00
손달익 / 서문교회 목사, 총회 서기

지금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는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행사가 진행 중에 있다. 히틀러의 광기에 의해 당시 구소련에서는 2천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독일 국민들도 6백80만 명이 전쟁으로 인해 생명을 잃었다. 러시아는 그 전쟁에서 자신들이 승리하여 지긋지긋한 6년 간의 세계 전쟁을 종식시켰음을 자랑스럽게 재음미하고 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결은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일본의 항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의 산물이었다.

본래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의 개발과 사용에 미온적이었으나 아인슈타인의 적극적 권유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서두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3차례나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내 독일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에 먼저 미국이 개발해야 세계적 재앙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로 루즈벨트를 설득했고 마침내 맨하탄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로 불리는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여 가공할 핵무기 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아인슈타인은 핵무기 개발 권고를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핵을 통해 안보를 확립하겠다는 생각은 파멸적인 환상에 불과하다'고 선언하고 핵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일에 생의 말년을 보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지성인의 웅대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에 대하여 '그것은 틀린 결정이었다'라고 스스로 규정하고 공개할 수 있는 용기는 진정한 지성인의 용기이다. 독일의 틸리케는 '인간이 지닌 용기 가운데 가장 위대한 용기는 자기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패를 인정하는 진정한 생의 용기는 그 삶을 더욱 존귀하고 감동의 힘이 있게 한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에서 우리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게 여기는 일도 '진정한 과거사 반성'이 없다는 사실이고 보면 실패 인정의 용기가 지닌 역사의 갱신능력을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어떤가? 얼마전 지난 세대 한국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였던 분들의 죄책고백이 신선한 감동이 된 것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자기미화와 합리화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었는지를 반증하고 일상사처럼 반복되어 온 우리의 회개가 얼마나 형식적이었으며 위선적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총회임원으로 봉사하면서 가슴 저리도록 아픔을 느낀 것은 교회들의 분규와 송사들이었다. 예배당을 철조망으로 둘러싸고 예배가 아수라장이 되어도 누구하나 가슴을 치며 '모든 것이 내 탓이다'라고 나서는 지도자가 없다. 자기 발견이 안 된 탓인지, 알면서도 힘의 논리에 밀려 양심을 잠재운 탓인지 알 길이 없지만 정의와 책임 그리고 교회의 영광은 이미 잊은 지 오랜 것처럼 보인다. 이래서는 안 된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이룬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더 큰 힘을 만나게 되면 모래 위의 집처럼 무너져 내리게 된다. 교회를 진실로 강하게 하는 것은 진실과 정의로 무장하고 자기반성과 갱신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할 때 가능케 된다. 그래야 세상을 감동시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금년이 아인슈타인 사망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 그는 일관되게 '내 생각이 틀렸다'라고 말하면서 '힘의 평화적 사용'이라는 후회어린 당부를 우리에게 남겼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진정한 인류애였으며 실패의 고백을 통한 자기완성의 길이었다. 우리가 가야할 길도 한길뿐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용기 있는 삶의 자세를 통하여 거룩함으로 무장된 교회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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