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로 변한 내 집, 우리 동네

[ 교계 ] 산불 피해로 시름하는 양양군 용호리 마을 사람들

진은지 기자 jj2@kidokongbo.com
2005년 04월 12일(화) 00:00
"불 다 꺼졌으면 뭐합니까, 남은 건 잿더미밖에 없는데……."

강원도 양양군 용호리 마을 주민 김청래 씨. 마을을 덮친 화마가 남기고 간 상처와 생계를 꾸려나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한 심정을 가눌 수 없다.

   
4월 4일 일어난 대형 화재로 전소된 양양군 용호리의 한 가옥.
양양군이 입은 피해는 전체 1백50여 가구, 가옥이 밀집된 거주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조한 날씨와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으로 인해 화재범위가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이 가운데 용호리는 전체 60여 가구 중 3분의 2에 달하는 40여 가구가 전소 또는 반소되는 피해를 입어 주민 대부분이 마을회관이나 인근 비닐하우스, 피해를 입지 않은 이웃주민 집에서 임시생활을 하고 있었다.

7일 용호리 마을 찾았을 때 마을을 뒤덮었던 검은 연기와 바람에 날리는 잿가루는 가라앉아 있었지만, 전소된 집터를 둘러보며 건질 수 있는 가재도구를 찾는 주민들의 모습도 간간히 볼 수 있었다.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왔던 김청래 씨는 전국 각지에서 도착하는 구호품을 배분하고 취재진들과 타지 사람들에게 마을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피해 상황을 수십번도 더 말했을 그 역시 집을 비롯해 올해농사지을 볍씨마저 다 타버려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화재지역 주민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양양군에는 자연산 송이 재배하며 소득원으로 삼았던 농가들도 일부분 포함돼 있어 이번 화재로 당한 물질적 피해는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현재 정부는 양양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금융지원 및 세제혜택 등의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또한 농가들이 언젠가는 갚아야 할 예정된 빚이어서 화재로 인한 손실에 더해 당장 살 길이 보이지 않는 주민들의 현실을 옥죄고 있다.

   
용호리 인근의 해변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오던 이 곳 상인들도 산불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진은 불에 타버린 음료수병.
18세 때 시집와 72년간 용호리에서 터를 일구며 살아왔다는 김월아 할머니(90세)도 옷 한 벌 건지지 못한 채 마을회관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 나와보니 이미 마을 전체가 불바다였어…. 얼굴이 뜨거워 혼났어…”라고 말하는 김 할머니는 같이 살고 있는 아들마저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상황.

발길을 돌려 강현면 건너편 해변가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했던 김혜경씨는 8년째 삶의 터를 일궈왔던 가게와 낙산사 부근에 있던 집이 모두 전소됐다고 했다. 현재 이웃 가게에서 기거하고 있는 김 씨 또한 가게와 집을 마련하는 데 몇달이 걸릴지 모른다고 무거운 속내를 털어놨다.

용호리 이장 장성관씨는 "잠시 진화될 조짐을 보였던 불이 헬기(산림청)가 비무장지대쪽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다시 살아나 더 큰 화재를 일으켰다"고 분통을 터트리면서 "농가와 숙박업소 등 군 전체 주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말한다.

"용호리 마을 주민 대부분이 60세 이상의 고령인 상황에서 정부나 구호단체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장 씨는 "용호리에 기독교인이 없는데도 교회에서 제일 먼저 와 도움을 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태풍 피해로부터 폭설 산불 피해까지, 계속되는 재해로 인한 강원도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농ㆍ어ㆍ임업 등 주로 자연이 내려준 땅을 일구고 바다를 터 삼아 살아온 이들 앞에 시련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이름 모를 손길들이 나눠준 관심과 나눔만이 현재를 버틸 수 있는 의지가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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