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해병으로~!

[ 빛으로 생명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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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11일(금) 00:00

박동업목사/8회

1999년 5월4일 해병1사단의 군종목사로 명령이 났다. 다시 해군에서 해병으로 군복을 바꾸어 입어야 할 상황이다. 해군은 국제 신사답게 조용하고 점잖게 군 생활을 한다. 반면 해병은 아주 터프하고 의리가 있다. 나는 성격상 절도 있고 화끈한 해병이 좋다. 해병1사단 교회인 충무교회와 몇 개의 연대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연대 목사가 없어서 연대교회까지도 돌보아야 할 형편이었다.

어느 날 연대교회에 가보니 군종병이 "목사님! 새벽부터 어떤 해병이 교회에 와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해병을 만나보니, "부대에 적응이 잘 안돼 죽고 싶다!"는 것이다. 답답했다. 군 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여러 해병 중 하나로 보였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죽고 싶으면 죽어야지! 잘 결심했다!". 그러면서 죽을 때의 주의사항(?)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때 군종병이 커피와 초코파이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왔다. 내가 커피를 마시니까 그 해병도 마시려고 잔을 들었다. 그래서 난 급하게 막았다. "죽으려는 친구가 무슨 커피야! 살 사람이나 먹어야지!"라고 말하면서 약을 올렸다. 다시 초코파이를 입에 넣었다. 그러니까 그 해병도 먹으려고 초코파이에 손이 갔다. "먹지마라! 무엇을 먹고 죽었다고 천국 가는 것 아니다!"며 막았다. 그 해병의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 보았다. 지갑에는 3만2천원이 있었다. 그래서 3만원을 꺼내면서 "이 돈은 내가 자네의 후배인 해병훈련병들에게 초코파이를 사서 나눠 줄께!"라고 했더니, 안면 근육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해병에게 4영리 구원의 진리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자살할 마음이 변했다. 열심히 군 생활을 하면서 전역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난 즉시 그 해병의 부대에 연락을 했다. 부대원이 한 명 없어져서 부대가 난리였다. "내가 데리고 있으니 데리러 오라"고 했다. 즉시 부대 주임원사가 와서 그를 데리고 갔다. 후에 그 해병은 연대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군 생활도 잘 했다. 자살은 감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죽으라고 해도 죽지 않는다. 지금도 난 그 해병을 위해서 기도한다.

늘 이렇게 성공만하는 것은 아니다. 참담하리만큼 괴로운 실패를 겪기도 한다. 해병 어느 대대에서 인격지도를 했을 때의 일이다. 부대 대대장이 나에게 "차 한 잔 하고 가세요!"라며 집무실로 안내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대장이 "목사님! 우리 부대에 적응을 못하는 해병이 있는데 목사님이 교회에서 좀 데리고 있다가 사람 좀 만들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사람 만들 자신이 있었기에 단번에 승낙했다. 그리고 교회에 데리고 와서 군종병과 함께 생활을 하게 했다. 새벽 예배에 참석시켜 열심히 기도를 하게 했다. 나 역시 안수기도를 해주면서 변화되기를 소망했다. 잘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군종병과 함께 몇 시간을 찾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큰일이다. 탈영을 한 것이다. 잘 보살펴 달라는 보호 사병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탈영을 했으니 정말 답답했다. 부대에 연락을 했다. 대대장과 주임원사가 와서 함께 대책을 의논했다. 먼저 집에 연락을 했으나 없었다. 부대에서도 몇 시간을 찾다가 끝내 사단에 보고를 했다. 사단장의 질책을 대대장이 받았다. 미안했다. 그런데 밤에 그 해병의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집에 왔는데 어찌된 일이냐?"는 것이다. 주임원사가 급하게 집으로 가서 그 해병을 모셔(?)왔다. 그 해병은 수감됐다. 괴로웠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한 해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탈영하게 한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난다.

요즘도 길에 해병이 지나가면 그냥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든다.

필승!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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