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특집/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도 흔들린다

[ 교계 ]

안홍철
2001년 05월 05일(토) 00:00

"남매 모두 영양실조와 피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가정을 잃은 충격 때문인지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으며 다른 사람과는 말도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폐증 환자 같았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경기 안산시 한 선교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선영(8세·가명) 석훈(4세·가명)남매.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는 지난해 실직했고 어머니는 가출했다. 이후 아버지가 폭력사건에 연루돼 구속되면서 남매는 선교원에 맡겨진 것. 선교원 실무자는 남매를 처음 본 순간을 회고하며 "아이들의 상태가 극도로 피폐해 있었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타워 크레인 운전을 하는 강모씨(50). 지난해부터 일감이 끊어져 생활비를 거의 대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올해 3월부터 아내 최모씨(49)가 파출부 일을 나섰다. 그러던 중 부부는 최근 심한 말다툼 끝에 20년 결혼생활을 끝내고 이혼했다. 최씨는 "남편이 돈을 못 버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매일 시비를 걸었다"고 말했다.

여고 2학년인 은영이(17·가명) 은 요즘 자신을 옥죄고 있는 현실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 "용돈을 올려달라" 고 부모를 조르던 발랄한 여학생에서 어느날 갑자기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소녀가장이 돼버렸기 때문. 아빠, 엄마, 여동생 등 네식구로 단란하던 은영이네 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극심한 자금난으로 경영하던 완구공장 문을 닫은 2월말부터 자상했던 아빠가 눈에 띄게 변해갔다.

"처음엔 술로 시름을 달래더니 점점 난폭해졌어요. 가재도구를 집어던지고 조금만 거슬려도 주먹을 휘둘렀지요"

아빠한테 손찌검을 당한 적이 없던 은영도 거의 매일 주먹과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고 그 충격으로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폭력에 지친 엄마는 지난달 동생을 데리고 가출했고 곧 이어 아빠도 "사업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20여평 단독주택에 홀로 남겨진 은영이는 전기·수도료 등 50여만원의 공과금을 체납한 것은 물론 생활비를 구할 길이 막막하다. "패션디자이너의 꿈은 버린지 오래"라는 은영이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흔들리는 가정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지난 3년동안 실직한 가장들이 소리 없이 가정을 떠나거나 이혼하는 가정이 급증, 결손가정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폭력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현상도 증가하고 있다. 이로인해 자녀양육과 교육에 문제가 생겨 보육원 등 시설에 버려지는 아이들과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발생, 가정해체 현상이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가출 청소년들은 절대적으로 경제적 약자가 되어 각종 유흥업소 종업원이나 원조교제 등을 통해 또 다른 사회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지난 2월엔 겨울방학을 이용해 원조교제를 한 혐의로 여자 중·고생들이 잇따라 경찰에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인천 모여고 2학년 A양은 인천시내 한 모텔에서 컴퓨터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최모(28)씨와 성관계를 갖고 9만2천원을 받는 등 방학에만 성인남자 3명과 모두 3차례에 걸쳐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인천 모여중 3학년 B양도 컴퓨터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이모(31)씨와 인천의 한 여관에서 성관계를 갖고 15만원을 받는 등 2차례에 걸쳐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상대 남성들을 모두 구속했지만, 두 여학생의 경우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재학생인 점과 구속 사유에 이를 정도로 상습성을 띠고있지 않은 점을 고려, 부모에게 학생들을 인계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두 여학생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별다른 자책감을 보이지 않았고 단지 "오빠들의 가정이 깨지게 돼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달 원조교제 청소년이 처음으로 구속된 것처럼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원조교제에 발을 들였다가 자신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크리스찬치유목회연구원 원장 정태기 목사는 "경제위기는 가정의 위기로 직결되며 많은 가정문제를 야기시킨다"면서 "지난 98년 IMF 이후 경제난으로 이혼이 늘고 시설보호아동들이 늘었다는 통계는 이를 반증한다"고 말한다.

서울시 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의 결식 초등학생수는 99년까지 1만9천8명이었던 것이 지난해부터 2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식 중학생도 지난해 7천4백46명에서 올해 4월 현재 1만명선으로 급증했고 결식 고교생 역시 2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다. 결식아동은 대부분 부모가 이혼하거나 아예 집을 나가는 등의 극단적인 가정 해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가정법원이 집계한 최근 3년간의 이혼 재판건수는 평균 1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경찰청 가출 신고센터에 접수된 60세 이상 노인 가출 역시 최근 3년간 2천5백명 선을 상회하고 있다.



가정은 사회의 기반

가정은 모든 사회의 기반이다.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흔들리게 된다. 가정이 흔들리는 현실에서는 사회나 국가의 안정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교회도 예외일 수는 없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가정들이 그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에따라 최근 가정사역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가정사역이란 가정에 대한 문제점을 알고 대처하며 나아가 해결해 가는 것을 사역의 초점으로 하는 것이고, 특히 기독교 가정사역의 의미는 많은 믿음의 가정이나 믿지 않는 가정에게 진정한 크리스찬의 삶의 모습을 통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삶이 되도록 돕는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가정과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 나라와 세계의 변화와 구원에 동참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가정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님 창조의 질서이다. 이 아름다운 가정이 교회의 기초를 형성할 때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정 사역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올바른 가족관계 형성을 위해서 새로운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가정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위기의 가정, 변화돼야 한다

한국가정사역연구소 소장 추부길 목사는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흔들리게 된다"면서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진 것이 곧 학교에서의 교사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이는 국가의 권위까지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추 목사는 이를 위해 "가족 구성원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 삶과 신앙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버지의 전화' 대표 정송 교수는 "위기가 닥쳤을 때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도출한 후 이를 가정 수칙으로 만들어 지켜 나간다면 어려움을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다"면서 "실직 등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회피하지 말고 가족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사랑해요' '용기를 갖고 도전하세요' 등 격려와 애정표현을 자주 해야 하며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않으며 정기적인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숭실고등학교 고3 담임 교사인 이향우 집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가 물질만으로 삶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를 삼고 있으며 교육체제도 인간을 인간 되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경쟁에서 이기는 자를 목표로 하고 있는 구조 속에 있다"고 지적하고 "향락이 삶의 내용이 되고 출세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청소년들에 대해서 교회와 학교, 사회와 국가 모두가 좀 더 책임적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정사역, 교회가 앞장서야

한편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소장 송길원 목사는 교회와 가정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가정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회자 중심의 가정 목회에서 벗어나 가정생활을 하는 평신도들이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탐구하고 나누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 송 목사는 "건축위원회, 교육위원회, 심지어 차량관리위원회까지 있으면서 가정사역위원회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가정사역을 위해서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일은 교회 내에 가정사역위원회를 설치하는 일"이라 강조한다. 송 목사는 그 다음 단계로 목회자들의 패러다임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정이 행복하도록 도울 책임이 교회에 있다는 것. 이제 21세기 사역의 현장은 가정이라고들 말한다. 정보화로 대변되는 21세기 사회, 급격한 변화를 겪는 21세기 목회현장은 가정사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가정이 살아 있어야 교회가 생명력이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창조하신 두 기관인 가정과 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21세기 목회현장은 가정사역을 그 중심에 갖다놓을 수밖에 없다. 가정이 건강해야만 사회가 건강하고, 교회가 든든히 서가며, 국가 또한 바르게 서갈 것이기에.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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