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공보55주년발자취/ 민족, 교회와 함께 한 55년

[ 교계 ]

안홍철
2001년 01월 20일(토) 00:00

일제 말기인 1945년 일본은 한국의 개신교회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폐합시키며 한국교회 말살정책을 폈고 이에 따라 교회언론도 강제 폐간돼 그야말로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8월 15일 하나님의 은혜로 나라를 되찾게 되었으나 기성교인과 출옥성도 간의 갈등이 표면화됐고 정치적으론 남한엔 미군이 북한엔 소련군이 주둔하며 남북이 단절되는 등 사회 혼란이 가중되게 됐다. 한국교회는 9월 18일 새문안교회에서 남한측 개신교회 전체의 모임인 조선기독교 남부대회로 모임을 가졌는데 남부대회가 남한측 만의 모임이 되자 감리교회에선 북 감리교회의 재건을 위해 퇴장, 장로교 일색의 대회가 됨에 따라 본교단의 전통을 승계하게 됐다.

본보는 이듬해 남부대회인 조선기독교회에 의해 `기독교공보'란 제호로 매주 목요일 4면으로 발행을 시작했다. 당시 이사회 조직은 이사장 김관식 목사(대회장) 이사 강태희, 최거덕, 김영섭, 김영주, 변홍규, 이수현, 이호빈, 심문태, 배은희, 정종원, 김창국, 김원봉, 신후승, 김춘배, 임병철, 강경옥, 엄재희 목사였고 실무진으론 편집부장 김춘배 목사, 편집부원 임영빈, 김재준, 최석주, 강태희, 송창근, 최거덕, 최윤관 목사가 수고했다.

본보는 당시 창간사를 통해 "公報는 조선교회의 公器이다. 私를 떠나서 公을, 小를 버리고 大를 邪를 斥하고 正을 따를…萬人의 것이면서 나의 것이 아닌 조선교회의 公器"라고 밝히고 "공보는 조선교회의 보도기관지이다. 우리 교회의 혈맥이 되어 上에서 下로 遠에서 近으로 西에서 東으로 京에서 鄕으로 산넘고 물건너 교회의 소식을 상세히 삿삿히 알리려는 傳令使"라며 한국교회의 대변지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1947년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 영락교회 김응락 장로가 인수, 운영하게 됐으며(사장:김관식, 부사장:김응락, 주필:김유연, 편집국장:임영빈) 1년 후엔 또다시 토마스 목사 기념선교회로 발행권이 넘어갔다가(운영진: 오문환 정재민, 편집국장: 강수악) 6.25 직전 또다시 총회 교육부에서 경영권을 인수했으나 한 호 발간후 6.25로 휴간하게 됐다.

6.25 사변으로 인해 중단된 신문 발행은 부산에서 `기독공보'로 제호 변경후 복간됐다. 당시 직원은 사장 권연호 목사, 편집인 황성수 장로, 편집국장 채기은 목사였다. 1953년 1월 지령 200호를 발간했으며 당시 공보처 조사에서 국내 1천여 주간지 중 1위로 평가받기도 했다. 1954년엔 신문체제를 순 한글로 혁신했으며 마침내 1954년 제 39회 총회에서 총회 기관지로 인수, 명실공히 대한예수교장로회 기관지가 됐다. 총회가 본보를 인수할 무렵엔 이미 고신측이 분열해 나가고 기장측이 새 교단을 구성하는 등 분열의 회오리가 몰아치던 때였다. 1959년 승동측(합동)이 분열할 때는 대대적인 지면을 할애하며 대통합을 계도해 나갔으며 결국 승동측이 분리해 나가자 산하교회가 에큐메니칼 노선을 견지하도록 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1959년 6월 29일 지령 5백호를 발간했으나 1966년 9월 24일 지령 8백45호 발간후 시설 미비로 폐간당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표면적 이유는 시설 미비였으나 제51회 총회 결의로 사고(社告)도 없이 발행이 중단되어 군사정권에 의한 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기도 했다.

1968년 9월 복간을 위한 이사회(이사장:김형남, 이사:최창근, 김항복, 이봉수, 정봉락, 유한섭, 정원성, 정석복, 사장: 김세진)가 조직됐으며 1970년 7월 9일 `한국기독공보'(발행인:안광국, 편집인 겸 인쇄인:김형남, 편집국장: 고환규)로 복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독공보는 이후 사장에 방지일 김종대 목사, 최창근 장로, 안광국 목사, 차봉오 한영제 김 암 신태영 장로에 이어 지난 1999년 1월 27일 편집국장 출신 고무송 목사가 부임하면서 전면 가로쓰기, 99년 8월부터 기존 16면에서 20면으로 증면, 2000년엔 24면, 2001년부터 24, 28면 격주로 증면 발행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됐다.

한편 편집국장에는 초대 김춘배목사를 비롯, 임영빈 강수악 채기은 김관호 조동진 고환규 목사, 유호귀 장로, 김태규 김창걸 김희보 고무송 목사를 거쳐 현재 김 훈 장로가 담당하고 있다.

본보는 1997년 3월 교계신문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오프라인(Off-line) 신문과 온라인(On-line) 신문을 겸비했으며 지난해 9월엔 제84회 총회를 실황으로 인터넷 생중계, 기독 언론의 새 지평을 열기도 했다. 지난 18일부터는 역시 교계 최초로 신문 지면을 그대로 볼 수 있는 PDF(Portable Document Format) 서비스를 시작, 최고(最古)의 신문일 뿐 아니라 최고(最高)의 신문으로서 자리매김을 했으며 본보는 창간 55주년을 맞아 "생명을 살리는 신문, 평화를 이루는 신문, 선교를 이끄는 신문"을 사시로 정하고 창간 1백년을 바라보며 한국교회와 독자 앞에 `제2의 창간' 정신으로 기독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짐한다. 안홍철 hcah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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