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도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 라떼는말이야 ] 예비역 육군 소장, 박남필 장로 ②

박남필 장로
2024년 10월 16일(수) 10:04
28사단 대대장 시절 독수리 OP에 태풍전망대를 세웠던 박남필 장로가 그 현장을 다시 찾았다.
1972년 3월 육사 졸업과 동시 소위로 임관하면서 당연히 선배들의 전례를 따라 전방부대로 배치될 줄 알았다. 그런데 특이하게 필동에 있는 수도경비사로 동기생 9명과 함께 배치됐다. 필동에 있는 사령부에는 교회가 없어 영락교회와 CCC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한번은 사령관이 대대장과 소대장 16명을 위로한다고 시청 근처에 있는 '대려도' 라는 중국 식당에서 회식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사령관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시작 전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나에게 담배를 한 대 권했다. 그런데 내가 담배 못 피운다고 거절하자 그럼 술이라도 한잔하라고 권했는데 또 술도 못한다고 거절했다. 이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대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사령관님이 "교회 다니나?" 하고 묻기에 "예" 라고 대답했는데 다른 말씀 없으시고 회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마 소위인 데다 육사에 3금 제도가 있는 것도 아시고 교회 다닌다고 하니까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신 것 같다.

1973년 후암동에 있는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수경사 전투지원 중대가 창설되었다. 필자가 차출되어 106미리 소대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필자가 계속 술, 담배를 안 하는 것을 보고 육사 선배인 중대장이 하루는 불러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너 육사 나와서 군 생활 계속해야 하는데 그렇게 술, 담배 안 하면 군대 생활 못 한다"라고 하시길래 "술, 담배 때문에 군대생활 못 한다면 저 군대생활 안 하겠습니다"라고 조금은 당돌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 후로는 나에게 술, 담배 이야기는 일절 안 하셨다.

그 후 11사단 중대장, OAC교육, 경호실 55경비대대 근무를 마치고 1980년 진해 육군대학에 입학했다. 육군대학에는 김홍태 목사님이 시무하셨는데 매일 새벽기도회에 출석을 부르시는 바람에 부지런히 새벽기도를 하면서 찬양대와 교회학교 교사를 했다. 육대에서는 주로 동기생끼리 주일날 모여 놀기도 하고 낚시도 가고 하는데 내가 매주 교회 가서 사니까 우리 동기들은 필자를 부르지도 않고 항상 제외했다. 그런 동기생들이 고마웠다. 동기생들의 격려 덕분에 신앙생활도 잘하고 졸업 때 수석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대에 교관으로 남기로 하고 육본 명령까지 났는데 졸업 3일 전에 육본 정정명령이 내려와 필자의 부임지가 육본 인사참모부로 변경됐다. 그래서 육본 인참부 행정과장에게 전화했더니 갑자기 "인참부장 보좌관으로 선발되었으니 그리 알고 휴가 끝나고 출근하라"는 소식을 들었다.

육본에 근무하면서부터 국군중앙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 후 참모차장 수석부관하는 기간과 대대장을 마친 후에는 5년간 육본에 근무하면서 국군중앙교회에서 찬양대와 교회학교 부장으로 봉사했다. 연대장을 마친 후에는 국방부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국군중앙교회에서 찬양대와 신우회 부장을 하며 직할부대 방문예배, 초소 및 영창 방문예배 등을 통해 군 복음화를 위해 열심히 봉사했다. 도합 4차례에 걸쳐 10여 년간 국군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샘이다. 집사람도 국군중앙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와 꽃꽂이로 봉사하면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했다.

그 후 군단 비서실장, 참모차장 수석부관을 거쳐 28사단 대대장으로 부임했다. 우리 대대 책임지역에는 독수리 OP라는 높은 고지가 있는데 그곳에 태풍전망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성탄절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리며 대북 확성기를 통해 북한 지역으로 예배 실황을 방송했다. 그렇게라도 북한에 성탄절을 전하고 싶었다.

대대 책임지역 좌측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임진강이 있다. 그곳은 간첩이 자주 침투하는 곳이라 출렁다리가 임진강을 가로질러 있고 그 밑에 작살을 만들어 간첩 침투를 방지한다. 그런데 그 작살이 여름에 홍수가 나면 무너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심이 낮아진 겨울철에 다시 작업을 해서 3월 초에 공사가 끝나게 되는데 그때 사단장이 지프차에 삶은 돼지 대가리와 고사 지낼 물건들을 싣고 와서 상을 차린 다음 작살이 무너지지 않도록 담당소대 병사부터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모두 돼지 대가리에 절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사부터 절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필자의 차례가 되었다. 어려서 어머니가 제사상에 절 안 한다고 핍박받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필자도 그 앞에 서서 절하는 대신 고개 숙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왔다. 그랬더니 사단장이 "그래, 대대장은 교회 다니지"라고 하시길래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이어서 연대장이 절하고 나니까 사단장은 말없이 지프차를 타고 획 가버렸다. 그러자 연대장이 자기도 천주교 신자인데도 절했는데 넌 왜 안 하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씩씩거리다가 가버렸다.

3월은 근무평정 쓰는 시기인데 사단장, 연대장이 저렇게 화가 나서 가 버렸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대대장 마친 후 육본 인참부에서 인력통제장교로 근무하면서 대령 진급 심사를 받았는데 좋으신 하나님이 동기생 중 12명만 진급하는 1차 진급자 명단에 필자의 이름을 포함시켜 주셨다. 필자는 대대장 때 사건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것으로 주셨다.

박남필 장로 / 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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