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칼럼 ]
임성국 기자 limsk@pckworld.com
2024년 09월 30일(월)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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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팩과의 전쟁을 어떻게든 선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4~5월부터 시작되는 '아이스팩 교환 프로젝트'가 있다.
모인 아이스팩 중 터진 것은 버리고, 순수 물로 만든 것이면 물은 버리고 비닐은 말려서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버린다. 겔로 된 것만 씻어서 그늘에 모아서 말린 후 교회 근처 마트나 정육점 특히 반찬가게에 공급하는 일이다. 이것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가지러 오기도 한다. 무인 밀키트숍에서도 인기가 아주 좋다.
이런 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꼬박 3번의 여름이 필요했다. 처음 교회 앞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만들어 두었을 때는 교인들 몇 명이 가져오는 게 전부였다. 막상 동네 쓰레기장에 가보면 쓰레기봉투에 넣지도 않고 던져놓은 아이스팩이 널려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아이스팩 두 개를 가져오면 식용유로 만든 비누와 바꿔준다고 써 붙였다. 옆 건물 상가에서 가져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비누 안 줘도 되니까 처리만 좀 해달라"고 모아서 가져오는 동네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많아서 고민도 됐다. 씻을 곳도 말릴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마당 있는 교회에서 평일에 수도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협조해 주었다. 혼자 씻고 있으니 아이스팩을 들고 온 동네 아주머니가 같이 씻어주며 한마디 보탠다. "목사님은 왜 고생을 사서 합니까. 이게 교회에 뭔 도움이 된다고요. 이거 가져오는 사람들 비누만 받아 가지 교회 안 나올 건데요"라고 말씀하신다. "아이스팩 가져오시는 분들이 교회 나오시면 제가 더 부담스럽죠. 저도 이 동네 주민인데 쓰레기장이 좀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하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아이고 이 목사님 큰 교회하긴 틀렸네" 하시고는 더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분을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스팩 모아서 닦고 나누고, 유통기한 지난 식용유 모아서 비누도 만들고, 우유갑 모아서 휴지로 바꾸고 그렇게 생긴 비누, 휴지들을 1인 가구 방문할 때 인사차 들고 가니 "빈손으로 가기에 좀 그랬는데 아주 잘 됐다"며 가정방문단원들에게 호응이 좋았다.
이래저래 하다 보니 결국 공간이 필요했다. 조심스레 "교회에서 모일까요?" 했더니 단호하게 "제가 커피 살 테니 커피숍에서 모이시죠" 한다. 그 말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작은 도서관에서 허가를 받았다. 공간이 생기니 날개 단 듯 사역이 늘어났다. 정확하게는 동네 사람들이 사역을 가져왔다. 심지어 행정복지센터에서조차 같이 일해 보자며 연락이 왔다.
'대체 교회 간판이 뭐라고 이렇게 지역에서 보이지 않게 턱이 높았던 걸까' 속상하고 마을에 미안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전도한답시고 뭔가 아주 많이 마을에 봉사했던 것 같은데 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걸까' 부끄러웠다.
어느 날은 동네 어르신이 동에서 귤을 한 박스 보냈다며 검은 비닐봉지 두 개에 잔뜩 담아 무겁게 들고 오셨다. "도서관에서 휴지든 비누든 라면이든 이거 좀 바꿔줄 수 있나? 노인네 혼자 사는데 귤 한 박스를 주면 썩어서 버리지 이걸 언제 다 먹냐?"며 역정을 내신다. '그렇구나. 선물은 받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구나' 크게 배운 날이었다.
급하게 냉장고를 열고 "어르신 필요한 거 집으세요. 귤이랑 바꿔요"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날 어르신은 귤 5kg 박스와 사과 2개, 배 1개, 바나나 2개, 비누 1개, 두루마리 휴지 2개, 라면 1개를 교환해 가셨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 되었다.
늘 이런 식이다. 굳이 목사는 마을 사람들 앞에 설 필요가 없다. 교회 이름을 내세울 것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목사를 일하게 한다.
"알겠다. 알겠는데 교회는 좀 부흥했냐"라고 묻고 싶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부흥이 예산의 증가라면 한국교회사에 남을 정도, 숫자의 증가라면 배 아플 정도는 될 것 같다. 다만 예산도 사람도, 언제나 많고 적음이 있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는 걸 배웠기에 헤아리지 않을 뿐이다. 쓰던 크레파스 모아서 보육원에 좀 보내야겠다고 공지했더니 우리 집엔 애들 다 커서 쓰던 크레파스 없으니 이걸로 크레파스 사라고 봉투 놓고 가는 마을 주민들이 남아있다.
감히 목회코칭, 교회컨설팅 이런 말은 못 쓰겠다. 목회라는 단어에, 교회라는 단어에 코칭이나 컨설팅이란 단어가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마을에서는 입 닫고 손발이 수고하는 게 목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김주선 목사 / 사람을돋우는마을사람들 대표
모인 아이스팩 중 터진 것은 버리고, 순수 물로 만든 것이면 물은 버리고 비닐은 말려서 재활용 분리수거함에 버린다. 겔로 된 것만 씻어서 그늘에 모아서 말린 후 교회 근처 마트나 정육점 특히 반찬가게에 공급하는 일이다. 이것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가지러 오기도 한다. 무인 밀키트숍에서도 인기가 아주 좋다.
이런 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꼬박 3번의 여름이 필요했다. 처음 교회 앞에 아이스팩 수거함을 만들어 두었을 때는 교인들 몇 명이 가져오는 게 전부였다. 막상 동네 쓰레기장에 가보면 쓰레기봉투에 넣지도 않고 던져놓은 아이스팩이 널려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아이스팩 두 개를 가져오면 식용유로 만든 비누와 바꿔준다고 써 붙였다. 옆 건물 상가에서 가져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비누 안 줘도 되니까 처리만 좀 해달라"고 모아서 가져오는 동네 주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없어서 고민이었는데 많아서 고민도 됐다. 씻을 곳도 말릴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우연히 알게 된 마당 있는 교회에서 평일에 수도와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게 협조해 주었다. 혼자 씻고 있으니 아이스팩을 들고 온 동네 아주머니가 같이 씻어주며 한마디 보탠다. "목사님은 왜 고생을 사서 합니까. 이게 교회에 뭔 도움이 된다고요. 이거 가져오는 사람들 비누만 받아 가지 교회 안 나올 건데요"라고 말씀하신다. "아이스팩 가져오시는 분들이 교회 나오시면 제가 더 부담스럽죠. 저도 이 동네 주민인데 쓰레기장이 좀 깨끗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냥 하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아이고 이 목사님 큰 교회하긴 틀렸네" 하시고는 더 열심히 도와주셨다.
그분을 중심으로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아이스팩 모아서 닦고 나누고, 유통기한 지난 식용유 모아서 비누도 만들고, 우유갑 모아서 휴지로 바꾸고 그렇게 생긴 비누, 휴지들을 1인 가구 방문할 때 인사차 들고 가니 "빈손으로 가기에 좀 그랬는데 아주 잘 됐다"며 가정방문단원들에게 호응이 좋았다.
이래저래 하다 보니 결국 공간이 필요했다. 조심스레 "교회에서 모일까요?" 했더니 단호하게 "제가 커피 살 테니 커피숍에서 모이시죠" 한다. 그 말의 깊은 뜻을 알아차리고 작은 도서관에서 허가를 받았다. 공간이 생기니 날개 단 듯 사역이 늘어났다. 정확하게는 동네 사람들이 사역을 가져왔다. 심지어 행정복지센터에서조차 같이 일해 보자며 연락이 왔다.
'대체 교회 간판이 뭐라고 이렇게 지역에서 보이지 않게 턱이 높았던 걸까' 속상하고 마을에 미안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전도한답시고 뭔가 아주 많이 마을에 봉사했던 것 같은데 대체 우리는 무엇을 했던 걸까' 부끄러웠다.
어느 날은 동네 어르신이 동에서 귤을 한 박스 보냈다며 검은 비닐봉지 두 개에 잔뜩 담아 무겁게 들고 오셨다. "도서관에서 휴지든 비누든 라면이든 이거 좀 바꿔줄 수 있나? 노인네 혼자 사는데 귤 한 박스를 주면 썩어서 버리지 이걸 언제 다 먹냐?"며 역정을 내신다. '그렇구나. 선물은 받는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구나' 크게 배운 날이었다.
급하게 냉장고를 열고 "어르신 필요한 거 집으세요. 귤이랑 바꿔요"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날 어르신은 귤 5kg 박스와 사과 2개, 배 1개, 바나나 2개, 비누 1개, 두루마리 휴지 2개, 라면 1개를 교환해 가셨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위한 시장이 되었다.
늘 이런 식이다. 굳이 목사는 마을 사람들 앞에 설 필요가 없다. 교회 이름을 내세울 것도 없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목사를 일하게 한다.
"알겠다. 알겠는데 교회는 좀 부흥했냐"라고 묻고 싶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부흥이 예산의 증가라면 한국교회사에 남을 정도, 숫자의 증가라면 배 아플 정도는 될 것 같다. 다만 예산도 사람도, 언제나 많고 적음이 있고,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는 걸 배웠기에 헤아리지 않을 뿐이다. 쓰던 크레파스 모아서 보육원에 좀 보내야겠다고 공지했더니 우리 집엔 애들 다 커서 쓰던 크레파스 없으니 이걸로 크레파스 사라고 봉투 놓고 가는 마을 주민들이 남아있다.
감히 목회코칭, 교회컨설팅 이런 말은 못 쓰겠다. 목회라는 단어에, 교회라는 단어에 코칭이나 컨설팅이란 단어가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마을에서는 입 닫고 손발이 수고하는 게 목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김주선 목사 / 사람을돋우는마을사람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