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 속 소중한 군인교회

[ 미션이상무! ]

전이루 목사
2024년 10월 02일(수) 13:57
해병대 용사들과 함께 한 전이루 목사(가운데).
돌이켜보면 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군 입대는 누구에게나 다소 공포스러운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병영문화가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지내던 일상과 인맥과 단절되어 미지의 세계로 던져진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종말론적이고 두렵기 때문이다. 보통 군 입대를 앞둔 이들은 그래서 편한 친구들을 만나 밤새워 놀거나, 일에 몰두하기도 하면서 다가오는 입대 시간을 잊어보려 애쓰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며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그래서 입대 전 평소 좋아하던 강화로 여행을 떠났다.

입대를 했고, 훈련을 받고, 해군·해병대 군종목사가 됐다. 그리고 첫 부임지가 해병대 강화교회였다. 몇 달 전 입대의 시름을 잊어보고자 민간인 신분으로 왔던 곳에서, 군복을 입고 빨간색 명찰을 달고 별안간 군목으로 사는 삶이 시작되었다.

첫 주일에는 비가 왔다. 폭우에 가까웠다. 해병대원들은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빗속을 맑은 날과 같은 차림, 같은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 다녔다. 우산을 쓰지 않느냐 물었더니 '괜찮습니다! 해병은 젖지 않습니다!'라는 기상천외한 답변이 돌아왔다. 문명인이라면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건 비교적 당연하다. 해병대에서 무엇을 겪은 것일까. 해병대에 대한 첫인상은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는 인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배 후 교회에 남고 싶은 이들이 신우회로 모였다. 보통 교회를 오래 다녔거나 신앙이 깊은 인원들이었다.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밥을 해서 같이 먹었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가장 막내 둘이 설거지하게 되었다. 해병 가위바위보. 선임은 무조건 보를 후임은 무조건 주먹을 냈다. 오랜 전통이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악습이 당연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스도인다움과 해병다움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해병들은 낯설었고 목사로서 고민이 깊었다.

군선교가 초코파이 하나로 설명되던 시절이 있었다. 병력은 많고 물자는 부족했던 시절, 군교회는 부대에 없는 것들이 있었고, 개화기 시절처럼 군인들은 신앙에 대한 별 문제의식 없이 보물창고 같은 교회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지났다. 병력은 줄고 보급은 원활하다. 군교회의 역할을 무엇이어야 할까. 군에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은 종교의 자유 보장이라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전장과 병영에서 종교의 공적 기능을 기대하며 종교인을 군인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 선교는 개인전도 차원을 넘어 군내에서 교회의 공적인 기능을 규명하고 증명하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군목으로서 나에게 군생활은 그런 고민과 도전이 연속되는 시간이었다. 조직 내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이 교회를 낯설어 하는 이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쉽게 불합리한 일상을 견디며 사는 이곳에서 교회는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무엇을 섣부르게 고치고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 나름의 생태계를 무턱대고 파괴하는 교란종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옳은 말은 쉽지만 옳은 말이 불합리한 삶을 개선시키는 경우는 드무니까. 옳은 말만 하는 설교자나 단순한 시혜자가 되기 전에 이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목사로서 해군·해병대로서 필자가 겪었던 내면의 고민과 경험을 솔직히 풀어내 보려고 한다. 모쪼록 현장에서의 부족한 고민이 어딘가에 닿아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결실이 맺어지길 기도한다.

전이루 목사 / 해군항공사령부 군종실장·해군포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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